마더 - 엄마와 딸이 헤어지는 순간, 새로운 싸움의 시작
엄마가 아이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자신을 사랑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엄마인 자신을 믿고 기대려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엄마 강수진(이보영 분)과 엄마 신자영(고성희 분)이 갈린 지점이 아니었을까. 신자영에게 딸 혜나(허율 분)란 그저 부담스러워 두렵고 무섭기만 한 존재였다.
딸이 자신을 사랑하기에. 사랑할 것이기에. 엄마인 자신을 믿고 따르기에. 기대고 있기에. 그래서 강수진도 혜나에게 묻는다. 혜나에게 묻고 그대로 따르려 한다. 혜나만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혜나만 좋다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을 보았기에 우연히 만난 남자아이의 아빠도 굳이 경찰에 쫓기는 강수진과 혜나를 도우려 했을 것이다. 아빠에게 강수진은 혜나의 엄마일 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아주 먼 옛날 남성들이 엄마로부터 아이를 빼앗아 자신의 아이로 만들려 했던 순간이 이랬었는지 모르겠다. 경찰 창근(조한철 분)에게 정작 아이의 행복이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남들어진 남성위주의 가족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법이라고 하는 가족을 정의한 오랜 규범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의 일이고 자신의 정의였다. 다른 고민은 필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로서 오로지 아이를 납치한 유괴범 강수진을 잡아야 했다. 창근에게 강수진은 엄마도 무엇도 아닌 그저 아이를 납치한 유괴범이며 오로지 신자영만이 혜나를 낳은 엄마여야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아이를 학대하든 죽이든 그것은 오로지 낳은 부모의 선택이고 책임이며 일단 벌어지고 나면 법으로 처벌할 뿐이다. 원래 오랜 시간 아이란 부모의 소유이기도 했었다.
엄마는 딸이라 생각한다. 딸도 엄마라 생각한다. 엄마는 딸이라 여기지 않는다. 딸도 더이상 엄마라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와 딸이 아니었고, 그럼에도 엄마와 딸이어야 했다. 부모와 자식일 수 없었고, 부모와 자식이어야 했다. 무엇이 가족을 정의하는가. 오로지 무엇이 가족을 전제하는가. 그래서 겨우 인연으로 맺어진 부모자식이 쉽게 서로를 등지고 헤어지고 평생 원망과 한을 남기기도 한다. 아직은 가족을 단지 하늘이 내려준 천륜으로만 여기는 문화가 어쩌면 많은 비극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사람의 인정이 움직인다. 그것은 본능이다. 엄마란 어때야 하는지. 가족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그러므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범죄자임에도 강수진을 도우려는 사람들이고, 그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강수진도 혜나도 엄마와 딸일 수, 가족일 수 있었다.
법정싸움으로 넘어간다. 과연 누가 엄마인가. 누구의 딸인가. 솔로몬의 재판일 수 있겠다. 문득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어쩌면 솔로몬 앞에서 아이를 반으로 나누자 한 것이 생모였고, 그럴 수 없다 울부짖은 것이 아이를 유괴한 이는 아니었을까. 어찌되었거나 아이를 사랑하는 쪽이 진짜 엄마다.
무거운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정말 천진하다.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기에 오로지 오늘만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더 솔직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만 온전히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런 혜나이기에 강수진도 어떤 위험이든 무릅쓸 수 있다. 또 다른 엄마의 후회가 밀려든다.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