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 아직 서로에게 돌아가지 못한 엄마와 딸
여전히 법은, 이 사회의 상식은 오로지 혈연만을 매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정이라는 것이다. 아니 원래 인간의 또다른 본능이기도 하다. 영장류 가운데 오로지 인간만이 공동육아를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영장류들은 새끼가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데 인간은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무리 안의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고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 역시 아이를 조심해서 받아 보살피고는 한다.
모성은 비단 여성만의 본능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지금까지 번성해 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일부 남성들의 주장처럼 남성이란 인간이라는 종에 있어 단지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종을 번성케 하는 것은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을 낳고 보살피는 것은 여성들이다. 그래서 기꺼이 아이를 위해 여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무의식을 가지고 있다. 같은 살인이라도 피해자가 남성인 것과 혹은 여성이거나 아이인 것이 전혀 사회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기와 다른 집단에 대해 린치나 보복을 가하려 할 때 여성이나 아이를 대상으로 삼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집단에 속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은 그만큼 집단의 남성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어찌되었거나 무리에 속한 아이들을 지키려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만 유전에도 변이가 일어나듯 인간의 본능에도 변이가 일어난다. 과도하게 밀집된 사회는 그같은 본능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아이를 보호하는 본능 만큼이나 더 중요한 다른 본능도 있다. 살아야 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엄마도 인간이다. 여성도 인간이다. 그저 엄마이기만 할 수는 없다. 남성들도 온전히 여성과 아이를, 인간이라는 종과 집단을 지키는 존재일 수만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은 아이를 가장 우선해서 지키고 싶어한다.
엄마 차영신(이혜영 분)와 엄마 남홍희(남기애)가 딸 강수진(이보영 분)을 지키고 싶어 하듯, 엄마 강수진이 딸 혜나(허율 분)을 지키고 싶어하듯, 형사가 아닌 인간으로서 창근(조한철 분) 역시 혜나의 안전과 행복을 무엇보다 우선해 생각한다. 보호시설의 어른들도, 한 눈에도 강수진의 편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보이던 재판관도, 마지막에는 혜나의 증언과 강수진의 고백에 침묵한 냉정해보이던 검찰마저도. 그래서 타협한 결과가 집행유예인 것이다. 죄는 있지만 처벌할 수 없다. 법적으로는 죄가 되지만 인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아이를 최우선으로 지키고자 한 행위는 인간에게 언제나 당연히 옳다.
세상과의 갈등이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엄마 강수진과 딸 혜나의 문제만이 남았다. 구속에서 풀려났지만 아직 혜나의 엄마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혜나 역시 강수진의 딸 윤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강수진은 엄마 차영신에게 돌아갔다. 병이 깊은 엄마 차영신을 다른 두 딸들이 지키고 있다. 혜나가 먼저 전화한다. 엄마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다시 강수진은 혜나 아닌 윤복의 엄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윤복은 다시 강수진의 딸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주 먼 시간이 지나더라도 가족이라면 결국 다시 서로에게 돌아가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답게 윤복은 무척 급하고 단호하다.
한국드라마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많은 외국인들 역시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감정이 풍부하다. 아니 감정의 극한을 보여준다. 메마를 정도로 감정을 절제하는 일본에 비해 한국드라마는 감정을 드러내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마음껏 울고 마음껏 화내고 마음껏 원망하다가 마음껏 기뻐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마저 그런 자신의 감정을 에두르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낸다. 낳아준 엄마를 비난하는 증언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해 준 진짜 엄마를 위해서 딱 한 가지만 증언하려 한다. 그러니까 윤복에게 누가 진짜 엄마인가.
과연 솔로몬 앞에서 아이를 두고 다투었던 두 엄마 가운데 누가 낳아준 친엄마인가. 상관없다. 누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보살필 진짜 엄마일 것인가. 솔로몬도 굳이 누가 낳았는가를 가리려 했던 것이 아닐 것이다. 아이를 위해 누가 진짜 엄마가 되어 줄 것인가. 다만 낳아준 엄마만이 오로지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랜 편견이 있었다. 진짜란 과연 무엇이가. 진실에 답이 있다.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