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먼저 할까요 - 또다시 사족, 더 방대해진 이야기가 오히려 겉돌다
사람은 많이 아는 만큼 때로 어리석어진다. 이유가 생각나고 핑계가 생각나고 그래서 너무 쉽게 도망치고 만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냥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다 부딪히고 자빠지면 그만이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그래서 서러워도 하고, 하지만 뭐 이리 무섭고 겁나는 것이 많은가.
소송중이던 제과회사 회상과 독대하는 장면은 오버였다. 무언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던 것 같은데 이물질처럼 섞이지 않고 따로 놀고 있었다. 사실 안순진(김선아 분)의 소송도 그렇게까지 디테일하게 그려낼 이유가 없었다. 변호사의 개인사까지 들먹이며 어려운 재판이다 강조해야 할 이유 따위는 없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손무한(감우성 분)이 시한부인 것도, 손무한과 안순진의 과거 악연도 답답하기만 한데 오히려 더 답답하게 상황을 꼬아 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심야에 뭔 드라마까지 이렇게 심각하고 피곤한가.
러브코미디면 러브코미디로 좋다. 처음 내가 이 드라마에 빠져 보게 된 이유였다. 삶의 고단함과 가난함을 딛고 이기려는 낙천과 긍정의 힘이 있었다. 어둡고 우울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픈 바람과 기대가 있어 보였다. 아무리 손무한이 시한부여도 그래도 사랑할 수 있겠거니. 그래도 행복할 수 있겠거니. 때로 오해하며 엇갈리더라도 결국 지금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재판이야 이기든 지든 그래서 그 끝이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그런데 너무 지나친 주변의 이야기가 정작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약화시켜 버린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다 주제를 잃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손무한의 딸 손이든(정다빈 분)과의 관계만으로도 앞으로 풀어가야할 이야기가 적지 않았을 터다. 이혼했지만 한때 사랑했던 전처와의 관계도 죽기 전에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백지민(박시연 분)과 은경수(오지호 분)와의 오랜 갈등도 안순진에게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기업과의 재판이라는 서사까지 디테일을 더하면서 산만할 정도로 이야기가 방대해진다. 그냥 손무한과 여전히 오해하며 엇갈리는 소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주제가 되어 버린 듯하다. 지난주부터 부쩍 드라마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이유다. 그런 주변의 이야기들로 허비하기에는 손무한이나 안순진이나 더이상 여유가 없다. 절박해야 할 시간에 또다시 그들은 오해와 갈등으로 안타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만다.
아마 이런 것을 두고 사족이라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냥 뱀이면 뱀인 채 그대로 놔두면 되는 것을 거창하게 뿔도 그리고 다리도 그리고 날개도 그려 본다. 뱀도 뭣도 아닌 이상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우울하고 답답한 감정만이 여전히 거슬리게 남아 있다. 이런 걸 기대한 게 아닌데. 내 잘못인 듯 하다. 지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