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 너무나 완벽해서 어설프고 유치한 환상, 꿈
처음 왜 이리 대사나 연출이 어설픈가 생각했었다. 해도해도 이건 너무 유치하다. 그런데 가만 보고 있으니 오히려 이게 맞다.
인간의 상상이란 무한하지 않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무어라도 겪든 알든 근거가 있어야 상상으로 아무거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평생 행복해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행복이 무어냐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까. 행복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그런 사람이 행복한 자신의 삶을 상상으로 그린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섬뜩하기조차 했다. 연기인지 연출인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인지 마치 기계처럼 컴퓨터 그래픽처럼 무미건조하게 정형화된 대사를 읊조리는 등장인물들이 섬뜩한 위화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구나. 분명 사람인데도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구나. 그렇게 누군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유치한 세계를 TV를 통해 노골적으로 엿보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염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
아마 주인공 도강수(최태준 분)가 프로작가였다면 좀 더 정교하게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상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더 치밀하게 자신의 성공과 행복마저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역량의 부족이었는지 덕분에 도강수의 현실과 꿈이 명확히 대비될 수 있었다. 아무 생동감 없는 그저 미끈한 거울과 같은 꿈과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잠시 느꼈던 따뜻함이 도강수의 내면에서 교차한다. 진정 소중한 자신에게 가치있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이가.
그저 조금 마음써주고, 조금 걱정해주고, 그런 서로에게 위로받고 안도하는, 그래서 오늘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삶이다. 상투적이지만 그것이 정답이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가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 대한 부질없는 후회나 미련이 아닌, 미래에 대한 헛된 희망이거나 몽상이 아닌, 오직 진짜인 지금 여기 바로 나와 나의 주변들. 그곳에 바로 자신의 행복이 있다.
행복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형뽑기는 매우 훌륭한 소도구였다. 매번 실패없이 성공만 하는 인형뽑기란 아무 재미도 가치도 없는 것이다. 실패하기에 도전하고 싶다. 좌절하기에 성공하고 싶다. 그렇게 현실에 딛는 한 걸음이다. 실패했어도, 좌절하고 절망했어도, 그래서 오늘이 힘들고 괴로워도, 도무지 희망같은 것은 보이지 않아도,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더 도전해 볼 용기가 생긴다. 때로 도망치고 때로 숨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같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순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현실로,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 다름아닌 진짜 자신의 행복과 삶을 위해서. 아니 삶이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런 단편드라마가 좋다. 새 미니시리즈인 줄 알고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갈 것인가 걱정했더니만 상투적이지만 깔끔하게 주제만 전하고 있었다. 오히려 단편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시도이기도 했을 것이다. 넘치지 않게 지나치지 않게 그래서 흐려지지 않게. 다만 더 짧았어도 좋지 않았을까.
뻔히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질리도록 흔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새삼 보고 듣고 새삼 느끼게 된다. 통속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소재가 적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