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어느 아저씨의 성장기
아마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초반 박동훈(이선균 분)의 아내 강윤희(이지아 분)가 도준영(김영민 분)과 몰래 만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 사람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이 사람을 위해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구나. 확실히 박동훈은 강윤희에게 너무 나쁜 남편이었다.
물론 누군가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힘들어도 참고,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견디며, 헤아릴 수 없는 수모와 굴욕과 좌절에도 꿋꿋이 버티면서 다른 누군가를 지탱하며 그들을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삶이 고통스럽기만 해서야 결국은 그 누군가에게 빚이 되고 짐이 되는 것이다. 나는 좋은 뜻으로 그리 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내가 불행해지기라도 한다면 상대 역시 결코 마음 편할 수만 없는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의 존재가 문제인 것은 아닐까. 자신의 존재가 원인인 것은 아닐까.
누군가로 인해 행복하다. 누군가로 인해 기쁘고 즐겁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떠오르는 옛이야기인 것이다. 오히려 어머니에게 발을 씻기던 어느 효자의 이야기다. 내가 그를 행복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내가 행복하다. 그런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자신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원래는 어머니에게, 형제들에게, 아니 누구보다도 자신의 아내인 강윤희를 위해 가졌어야 할 다짐이었건만 엉뚱하게 이지안(이지은 분)에게 약속하고 있었다. 너를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행복해지겠다. 그러니 자기가 행복한 모습을 반드시 보아달라. 그러니까 아내에게 가장 먼저 했어야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하긴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기는 하다. 결국은 컴플렉스다. 박동훈의 과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어차피 드라마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파고들 생각도 없을 것이다. 과거 어느 순간 박동훈이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안다면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일이란 성장과정에서 누구나 몇 번 씩, 아니 아예 넘치도록 겪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박동훈의 말에 단서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정작 그런 때 가장 중요한 그 한 마디를 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괜히 혼자서 심각해서는, 진지해져서는, 그래서 더욱 자신을 다그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내 강윤희가 도준영과 바람핀 사실에 대해 무엇보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부정이라며 분노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평가였다. 자신에 대한 정의였다. 자신은 어떤 인간인가. 어떤 가치가 있는 인간인가. 진정 아내를 사랑했다면 아내에 대한 배신감에 먼저 몸을 떨었어야 했을 것이다. 서럽도록 지독한 에고였다. 치졸할 정도로 간절한 자신에 대한 집착이었다. 아내의 부정보다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그로 인한 세상의 자신에 대한 판단과 비평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비로소 박동훈은 그것은 세상의 눈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바로 이지안 때문이다.
어쩌면 처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편을 들어준 것은. 자신의 민낯을 낱낱이 지켜보았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좋아한다 말해 주었던 것은. 아니 그 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라면 강윤희가 박동훈과 결혼했을 리 없었다. 어머니도 형제들도 동네 친구들도 모두 박동훈을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비루한 박동훈의 자의식이 애써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그럴 리 없다.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러나 자신을 누군가 매순간 도청했다는 사실은 박동훈을 더이상 거부할 수 없는 궁지로 내몰고 만다. 사실은 그동안 누구보다 간절하게 절실하게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누군가 자신을 알고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을 편들어준다. 어떤 거짓도 가식도 연기도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좋아해준다.
그래서 필요없어진 것이다. 세상의 판단도, 세상의 비평도, 그래서 쏟아질 세상의 비웃음이나 동정마저도. 새삼 박동훈과 강윤희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것을 기대해 보는 이유다. 비로소 깨달았을까. 자신이 남편으로서 그동안 강윤희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러 왔는지. 어째서 강윤희가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외도까지 하게 되었는지. 원래는 이지안이 아닌 강윤희여야 했을 테지만. 하지만 원래 남자란 평생 자라지 못하는 아이와 같은 터라. 비로소 당당해진다.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어느때보다 홀가분하다. 이지안을 위해 심지어 그토록 집착하던 회사를 떠날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지안은 어떨까. 처음으로 용서받았다. 정확히 인정받았다. 자기 때문이다. 자기 덕분이다. 자기로 인해 행복해지려 한다.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다. 물론 그 행복에 이지안의 자리는 없다. 그래야만 비로소 박동훈은 온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역설이다. 그것은 원죄이기도 하다. 부정으로 시작된 관계다. 어떻게 해도 결코 올바른 동기와 과정을 통해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용서받고 싶었다. 열 번 만 잘못했다 빌면 용서해주겠다. 혼자서 큰 길에 서서 무작정 머리를 좋아리고 죄송하다 사죄한다.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박동훈은 자신의 자리로, 그리고 자신은 박동훈을 알고 난 새로운 자신의 길 위로.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마다 각자 다른 사연과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인연에 이끌려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단한 이유같은 것 없어도. 거창한 명분 같은 것 없어도. 어마무지하게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어도. 그냥 비루하고 초라한 몰골이어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만으로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으며 시시한 시간들을 한심하게 서로 공유한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정희네로 수렴한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건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그저 그런 아무것도 아닌 지금이고 바로 여기다. 살면서 항상 깨닫게 되는 한 가지다.
겸덕(박해준 분)의 번뇌가 깊다. 아예 정진 도중 식사까지 거르고 있다. 사미도 그 사실을 어렴풋 깨달은 모양이다. 잡으려 하면 떠나고 보내려 할 때 오히려 돌아온다. 정작 눈앞에 두고도 무심코 지나치기도 한다. 사람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인연이고 운명이다. 보통의 의지와 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모이는 곳에 홀로 사랑을 간직한 정희(오나라 분)가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모르는 사이면 아예 없는 것이나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뭐라 말하든 무슨 상관인가. 단 한 사람이다. 진정 듣고 싶은 단 한 사람이다. 인정받고 싶은 단 한 사람일 것이다. 그 한 사람을 위해서.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괜히 멀리 돌아오기는 했지만. 한 아저씨의 성장기다.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