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 법에 대한 비관과 낙관, 그 절묘한 조화와 대비
법은 최소한의 정의다. 하지만 이 말에는 두 가지 다른 해석이 붙는다. 법은 사회가 보호할 수 있는 정의의 최대치다. 딱 이 안에서만 정의는 지켜져야 한다. 한 편으로 법은 사회가 보호해야 할 정의의 출발점이다. 법으로부터 시작해서 더 폭넓은 정의가 지켜져야 한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임바른(김명수 분)과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박차오름(고아라 분)의 캐릭터는 의도한 듯 정확히 대비를 이루고 있다. 어차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법관이 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제한되어 있다. 딱 그 만큼만. 더도 덜도 아닌 법과 법관이 할 수 있을 만큼만. 그것이 법과 법관이 지켜야 할 세상의 정의이며 질서다.
하긴 자란 환경이 그렇기 때문이다. 해직기자 출신에 그저 사람만 좋은 아버지 아래에서 고생하며 자란 임바른과 그래도 좋은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랄 수 있었던 박차오름의 세계는 그래서 그만큼 다를 수밖에 없다. 나쁜 사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착하고 정직하다. 다만 저마다 다른 사정과 사연들이 그들을 급하게 각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풀어주는 것이 법이 해야 할 일이다. 과연 박차오름은 자라면서 법도, 정의도, 상식도, 윤리도, 이성도, 양심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 부조리한 일들을 얼마나 겪어 보았겠는가. 그러니 법은 그런 선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법관은 그런 역할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세상은 결국 그 두 가지 모두로 이루어져 있다. 선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악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기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이타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사회의 구조는 이기를 전제로 이루어져 있다. 저마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조화가 이루어지고 균형이 만들어진다. 그런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는 임바른이 박차오름보다 더 직관적으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한 편으로 그런 구조를 벗어난 개개인의 사연에 대해서는 박차오름이 더 깊이 공감하며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임바른과 박차오름이 하나의 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둘러싼 현실에 닳고 닳아 버린 부장판사 한세상(성동일 분)이 그들을 이끈다. 박차오름과 같은 신념을 가지고 법관 생활을 시작했고 임바른처럼 어느새 법원이라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과연 그런 그들의 팀이 앞으로 내리게 될 판결이란 과연 어떤 것들일까.
아무튼 그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임바른의 캐릭터일 것이다. 박차오름은 그냥 선한 것이다. 그냥 정의로운 것이다. 뒤를 생각지 않는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옳으면 옳고 좋으면 좋다. 정말 혜택받은 환경에서 자라난 구김살없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임바른이 박차오름과 달리 이기적이기고 계산적이기만 한가는 역시 동료인 정보왕(류덕환 분)의 캐릭터가 비교대상이 되어 주고 있을 것이다. 그냥 원칙을 지키려는 것 뿐이다. 그저 이미 있는 상식들에 충실하려는 것 뿐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안다.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못할 일들을 안다. 그런다고 더 좋아진 것도 나아질 것도 없음을 안다. 그래서 최소한이다. 법도 정의도 진실도 상식도 논리도 모두 가능한 최소한만을 생각한다. 가진 만큼 누린 만큼 법도 최대한이기를 바라는 박차오름과 그래서 충돌하고 갈등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상적이기는 물론 박차오름이 이상적이다. 맡은 사건 하나하나를 마치 자기 일처럼 공감하며 깊이 파고들려 한다. 아주 작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를 위한 최선을 쫓으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임바른 정도의 판사를 요구하고 있다. 법과 관습과 상식과 원리에 의해 내려지는 최소한의 정의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그 이상은 드라마에서도 보았듯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차라리 더 큰 사고를 치지 않고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 균형과 조화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시작도 그다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었다. 솔직히 식당불판사건의 결론도 조금은 신파조로 지루하기까지 했었다. 그래도 무언가 끝까지 보게 되는 것은 그런 유치한 장면들에 끌릴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터무니없고 그래서 불안하고 때로 불편한데도 어쩐지 박차오름을 응원하게 되는 것처럼. 임바른이 박차오름처럼 되었으면 바라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한 편으로 박차오름도 임바른을 닮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젊은 판사들이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이들이다.
법이 신뢰를 잃은 요즘이다. 정의의 상징이던 판사들마저 어느새 신뢰를 잃은 지 오래인 지금이다. 범죄자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진실과 싸운다. 법을 도구로 인간과 삶을 판단해야 한다. 그 속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고민하며 성장해간다. 그런 이야기일 터다. 세상은 과연 어떤 판사를 바라는가. 그리는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