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무법변호사 - 허구같지 않은 익숙한 현실

까칠부 2018. 5. 27. 06:41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차문숙(이혜영 분)의 아버지 동상 제막식을 보면서, 그리고 부패한 판사부녀를 대를 이어 추종하는 기성시민들을 보면서, 다만 모델 이 된 그 사람은 차문숙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멍청하고 무능했다는 점이 위화감을 느끼게 했을 뿐이다. 설마 감옥에 간 또 한 사람의 국밥먹는 광고까지 패러디할 줄이야. 그러고보면 그 사람이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뉴타운이라는 이름의 재개발사업이었다.

 

사실 어이가 없는 것이다. 판사 월급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그 월급 받아서 다른 데 손 벌리지 않고 그같은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활이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거자 생기는 돈이란 없다. 당연히 그만한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무언가 그만한 대가를 치렀으니 판사 월급으로는 불가능한 생활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비서 남순자(염혜란 분)가 저리 설치고 다니는데도 그에 대한 작은 의심조차 품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최순실은 아무 공식 직함없이 비선실세로 있었다. 대중이람 이토록 무지하고 맹목적이며 어리석기만 한가.

 

법과 돈, 무엇보다 기성시민 거의 다수로부터 맹목에 가까운 존경과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언론마저 그들의 편에서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고작 전국구라지만 깡패두목에 불과한 외삼촌과 변호사로서 가진 알량한 법과 진실만으로 그런 차문숙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당장 일개 하수인에 불과한 안오주(최민수 분)마저 상대하기 만만치 않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야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무모할 정도로 어렵고 무모한 싸움에 덤벼든 것이다. 정의감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정의감 같은 추상적인 동기보다야 어머니의 복수가 더 직접 깊이 와 닿는다.

 

조금 무리한 장면들도 있었다. 특히 법정에서 브로커를 설득할 때 확실하지 않은 감정에 너무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확실히 스릴러다운 치밀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보다는 마치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낙천과 그로부터 비롯된 통쾌함이 있다. 당장은 안오주의 반격에 곤란해진 듯 보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파트너 하재이(서예지 분)역시 봉상필(이준기 분)과는 자기만의 능력과 감성으로 그의 빈틈을 메워줄 것이다. 더구나 하재이에게는 아직 알지 못하는 차문숙과의 원한관계가 있다.

 

위선일까? 아니면 그것만은 최소한 진심이었던 것일까? 과연 차문숙은 자신의 지시로 인해 하재이의 실종된 엄마가 살해된 사실을 알고서 그리 하재이를 다정히 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대로 소름끼치는 일일 테고 아니라면 그 역시 드라마에 하나의 반전이 되어 줄 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 것일까? 어느새 실종된 엄마의 원수가 될 또다른 엄마와 하재이는 운명적으로 부딪혀야 한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안오주의 태생적인 비굴함이 최민수의 표정 하나 몸짓하나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지금 시대에 진짜 악은 무엇인가. 법을 파괴하는 위에 법을 이용하는 이들이 있고, 그 위에 다시 법을 만드는 자들이 있다. 법을 소유한 자들은 필수로 권력과 명예마저 모두 가지고 있다. 우매한 대중마저 그들의 편이다. 하필 정권과 야합했던 법원의 치부가 드러난 요즘이라 더 직접 와 닿는다. 그리고 그 법에 기생한 악들이 대중을 속이며 지금도 수믾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법과 싸우려면 차라리 그 법을 버려야 한다. 드라마를 위한 철저한 허구이며 또한 현실이다.

 

하재이는 조금씩 진실에 다가가고 그만큼 봉상필 역시 차문숙에 다가서고 있다. 넘어서야 할 벽이 높기만 하다. 진실은 아직 두터운 장막에 가려져 있다. 하재이 아버지의 거부와 외면은 봉상필이 감당해야 할 현실이다. 이혜영은 정말 한 눈에도 섬뜩하도록 못돼 보인다. 태블릿이 나왔다. 동영상은 핸드폰으로도 충분하다. 당신이 지금 부모처럼 믿고 따르며 존경과 사랑을 보내는 그가 사실은 부모를 해친 원수일지 모른다. 허구같지 않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드라마는 오히려 가볍다. 쉽게 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도 괜찮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