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 과거를 딛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모두를
설마 거기서 그렇게 직구를 던질 줄 몰랐다. 피하지도 않고 변화구도 아니고 그냥 한 가운데 대놓고 쳐봐라 직구를 꽂아넣는다. 그만큼 자신의 감정이 버거웠을 것이다.
원래 말이란 게 그렇다. 마음이 차고 차고 또 차고 넘쳐서 흘러나오는 것이 말이다. 혼자서 좋아하는 감정을 더이상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이만큼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데 혼자서만 간직하기에 너무 버거웠을 테니까. 여유라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체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 더 확실해졌을 때 조금 더 그럴싸한 장소에서 조금 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고백하고 싶었을 텐데. 어차피 임바른에게도 여유같은 건 없었다.
여유없는 고백과 여유없는 대답, 임바른은 자신의 감정이 버겁고, 박차오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괴롭다. 지난번에 했던 말 취소다. 과거가 행복하다고 지금까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과거 사랑했다고 지금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간다. 사람의 마음도, 현실의 물질도, 간직했던 기억마저도. 임바른의 말처럼 - 아니 정확히 '안나 카레리나'의 인용처럼 저마다 사람은 자기만의 사연을, 불행을 마음속에 숨기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지지 않고 꿋꿋하게 현실을 버티며 사람은 살아간다.
과거 자신이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번 정치인의 소송은 박차오름을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임바른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과거 자신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하는 오래전의 자신은 감히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달라지려 한다. 용기다. 가지 못한 길을 가고, 하지 못한 일을 하고, 그럼으로써 한 걸음을 내딛는다. 과거를 이기고 현재를 산다. 과거에 구애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간다. 자신의 과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그보다 자신의 현재로 관심을 돌리면 된다. 잊는 방법이다. 과거를 딛고 현재를 사는 것. 박차오름을 사랑한 과거를 딛고 지금의 박차오름을 사랑하는 것. 비록 한 번은 차였지만.
딱 멋진 남자 컨셉이다. 바로 보이는 곳에서 있는대로 드러내며 위태한 그녀를 지탱하며 지켜준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 후회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 그래도 후회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랜동안 간직해 온 감정이 결국 당사자의 거부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끝내는 것은 임바른 자신이다.
법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랑이야기다. 판사의 이야기라기보다 사랑하는 청춘의 이야기다. 과거에 버거워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다. 그래서 인간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재판의 비중이 줄어드니 한세상 판사의 역할도 줄어든다. 하긴 한 바탕 큰 소동이 끝난 뒤일 것이다. 숨을 고르며 다음을 위해 몸을 달군다. 지나치게 달달하지 않아 결국 응원하게 된다. 딛고 이기기를. 사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