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 그냥 웃을 수 있는 로맨틱코미디

까칠부 2018. 6. 7. 10:01

원래 로맨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재 가운데 하나가 사랑같은 건 전혀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너무 잘나서 자기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남자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 아니 벌써 사랑에 빠져 있다. 그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이를테면 변형된 미녀와 야수다. 저주에 걸려 거울만 보는 왕자를 마을의 선량한 처녀가 구원해준다. 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직장생활의 애환이 어우러진다. 비서만 그런 게 아니다. 출근도 퇴근도 따로 없고 상사의 말 한 마디에 휴일조차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이 현실에도 넘쳐난다. 자기 이름이 아닌 회사에서의 직책으로 불리며 그것이 진짜 자신인 듯 여겨진다. 그러고보니 요즘 크게 유행하는 말이 워라밸이다.


내 삶을 찾겠다. 내 시간을 갖겠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언니들 뒷바라지에, 아버지 빚에, 겨우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니 앞으로가 걱정된다. 모든 직장인들이 가지는 가장 큰 두려움이고 고민일 것이다. 내년에도 나는 지금 이곳에 있을 것인가. 몇 년 뒤에도 나는 지금 이곳에서 지금의 일을 하고 있을 것인가. 평생고용이 사라지며 직장인들의 직장에 대한 애착 역시 많이 약해졌다. 어차피 언젠가 잘릴 직장이라면 내가 필요할 때 내게 유리할 때 내가 먼저 그만두겠다. 하지만 너무나 흔한 김비서지만 김미소(박민영 분)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갑과 을이 바뀐다. 바로 그것이 포인트다. 그래서 로맨스이기도 한 것이다. 현실에서는 얼마나 많은 부와 높은 지위, 큰 권력을 가졌는가에 따라 갑을이 나뉘지만 로맨스에서는 먼저 사랑에 빠진 쪽이 철저히 을이 되어야 한다. 갑을이 바뀐다. 갑이어야 할 부회장 이영준(박서준 분)이 을이 되고 을이어야 할 김비서 김미소가 갑이 된다. 부조리에서 오는 코미디다. 예상치 못한 엉뚱한 사랑과 그로 인한 관계의 역전이 시청자의 고단한 현실을 비튼다. 처음부터 이영준의 주위는 딱 웃기 좋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때로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드라마를 찾게 된다.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꿈같은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찾아보게도 된다. 맺히거나 꼬인 곳 없이 오로지 올곧은 김비서의 캐릭터가 차라리 상쾌하기조차 하다. 어떻게 김비서는 이토록 순진하도록 상식을 벗어난 이영준을 바꾸어갈 수 있을 것인가.


전혀 아무 기대없이 보기 시작했다가 그만 내일을 기약하고 말았다. 박서준은 더 뻔뻔해졌고, 박민영은 더 해맑아졌다. 박서준의 스페인어에서 '윤식당2'를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조건반사일 것이다. 사랑이 아닌 필요에 의해 결혼을 신청한다. 결혼을 신청한다는 자각조차 없다. 상식을 벗어났다. 진짜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