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 판사와 인간, 법과 좋은 사람의 경계

까칠부 2018. 6. 20. 01:19

그래서 한비자는 엄정한 법의 주재자로서 인간을 배제한 절대군주를 전제했던 것이었다. 사람의 팔은 안으로 굽는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멀고 가까운 것에 따라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까운 것은 옳고 먼 것은 그르다. 그런 것을 한 편으로 인지상정이라 하여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판사를 그만뒀어야지!"

 

그러니까 진정 판사로서 오로지 법에만 충실하고 싶으면 박차오름처럼 경우기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아래도 없고, 가깝고 먼 인연도 아랑곳않고, 혹시 모를 손익마저 따지지 않는다. 옳다고 여기니 행동하고 그르다 여겼으니 행동에 나선다. 당연히 주위로부터 고립되기 싫다.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지만 너무 물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다. 부장판사를 청탁으로 고발한 일로 인해 박차오름은 다시 얼마나 더 법원에서 주위로부터 외면당하게 될까. 그러고보면 임바른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싸가지없기는 오십보백보다.

 

자기가 그 처지가 되어 보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 하긴 대기업 회장 뜸 되면 밉다고 굳이 천박하고 상스런 욕을 입에 담을 필요도 없을 것이나. 현실의 부조리함이다. 말을 전할 방법도 들어주는 이도 없기에 무작정 목소리부터 키워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굳이 입밖에 꺼내 전하지 않아도 알아서 먼저 헤아려 대신 판단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든 자기 말을 들어딜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을 점잖게 타이른다. 법대로. 절차대로. 상식과 예의를 지켜서. 자신이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고 판단하는 편에 서 있다.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병을 판단할 지식이 부족하다.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주위를 돌아볼 여유마저 없다. 당연히 내 어머니이니 어머니의 병이 가장 중하고 급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면 왜 민원인들은 법원에 대해 그토록 불신을 보이고 있을까? 말도 안되는 억지를 쓰며 근거도 없는 의혹을 사실처람 확신하면서 비난부터 하는 것일까? 몰라서 그러는 것 맞다. 그래서 판사라고 모든 분야에 대해 다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기가 모르는 분야에서는 판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 인지상정이라는 것이다. 임바른도 그것을 깨닫는다. 민원인의 막무가내에는 말로 다하지 못한 사연이 감춰져 있지는 않을까. 바로 자기가 병원에서 구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판사들의 이야기다. 오로지 법만을 지키기에는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인간의 이야기다. 법 그 자체가 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인간이라는 모순과 괴리 속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판사라는 인간이 대한 것이다. 그래서 때로 약해지고, 그래서 때로 자신이 지켜야 할 법을 배반하기도 하는. 좋은 사람이고 싶기에 판사로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마저 무심결에 저지른다. 그러니까 법의 주재자인 군주는 인간을 벗어난 존재여야 했던 것이다. 인간이 법을 판단하고 집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모든 판사들이 박차오름같아도 문제일 것 같다는 것이 인간사회가 가지는 복잡함일 테지만.

 

그나마 이번에는 보고계통을 통해 절차대로 처리하고 있었다. 직속상사인 한세상 부장에게 먼저 보고하고 한세상 부잔도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수석부장에게 보고해서 처리케 한다. 법에 따른 처분이었음에도 너무나 인간적인 인정이 그 발단이 된 박차오름에 대한 노골적인 분노와 원망이 되어 쏟아진다. 정당한 재판결과에도 억울하다며 법원을 쉽게 음해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수많은 민원인들처럼. 민원인들의 원망과 분노가 판사들은 너무나 억울하다. 법원에서 가장 인망있던 부장판사를 고발한 결과를 박차오름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

 

아무튼 세상이 그렇게 온통 심각하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사랑할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수많은 오해에도 불구하고 정보왕은 한 가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진실을 찾아낸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으며 양보는 더더욱 할 수 없다. 자싱은 매력적인 여자 이도연을 사랑하고 있다. 자기의 모든 오해가 설사 사실이라 할지라도 절대 먼저 물러설 수 없다. 그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승부는 변화구보다 직구다. 박차오름과 임바른도 보고 배워야 한다. 두 사람 다 쓸데없이 생각이 너무 많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해야겠다. 진짜 전관예우라는 것은 아예 있지도 않은 대중의 의심이 만들어낸 도시전설일 뿐인가. 그러고보면 드라마의 작가도 현직 부장판사이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명백한 사실들은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앞장서서 비판하더라도 진짜 치명적인 의혹에 대해서는 자연히 팔이 굽는대로 따라간다. 실제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한 수많은 사례들이 모두 오해이고 침소봉대일 뿐이기만 한가.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나도 다르지 않지만. 임바른과 박차오름의 앞날은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먼저 박차오름의 넘치는 정의로움부터.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