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세상에 대한 실망, 분노, 그리고 기대와 희망

까칠부 2018. 6. 26. 01:20

그래서 법이 필요한 것이다. 당대까지 공맹이 아닌 공순이라 불럈던 이유였다. 인간은 원래 본성이 악하므로 법과 제도, 교육을 통해 가르치고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순자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법가를 집대성한 한비자였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시대가 악했다. 오히려 정의롭고 공장했던 시대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교활하고 악랄하고 난폭하고 지독한 사람일수록 거의 승리했고 그 후손이나 후계자들이 이후 역사를 지배했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란 어쩌면 진화론적으로 악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발전시켜 온 것인지 모른다. 더 악할수록 선택받고 살아남아 그 유전자를 남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은 악한 선조의 후손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부분의 인간이 악하다고 항상 악하기만 했다면 인류는 결코 지금처럼 크게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희생하려는 사람도 있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남을 돕고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옳은 삶이라 가르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그것을 의무로 강제로 명확히 정의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선악을 구분하고 옳고 그름을 나눌 줄 아는 것은 그런 앞선 이들의 노력 덕분이다. 혹은 성인이라 부르고, 혹은 선지자라 불리던 이들이다. 때로 그들은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순교자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인류의 양심은 그런 소수의 선의에 기대어 지금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도 문제라 여기지 않던 일들을 처음으로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했던 그들에 의해서. 모두가 아니라 틀렸다 여기는 그 길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 나만 힘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 점에서 임바른은 현자다. 정해진 틀 안에서 정답을 찾고 정확히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나만 틀리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었든 그것으로 되었다. 그런 완결된 임바른의 세계를 헤집어 놓은 것이 바로 박차오름이었다. 차이는 분노였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 여길 수 있는 솔직함이었다. 옳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바로잡아야겠다. 그럴 수 없는 수많은 현실적인 이유들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임바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원래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고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쁜 것은 나쁜 것이고 옳지 못한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닌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단 사회적으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최소한 법을 지켜야 하는 판사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탈일 수 있는 것이다. 판사의 모든 행동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은 결코 약하지 않다. 약했다면 악으로 채워진 듯한 대부분의 시대를 살아남아 지금처럼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선의로도 아주 조금의 정의만으로도 인간은 그 모든 악들을 견디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런 작고 약한 선의와 정의에 기대어 양심을 지키며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박차오름도 자칫 무시하고 있었다. 재판에서 불리한 판결을 내렸으니 당연히 원망부터 할 것이다. 악한 것도 인간이지만 선한 것도 인간이다. 인간의 선의를 느끼는 것도 인간이다. 정작 선한 약자의 편에 서고 싶어 하면서 그들의 지혜와 용기를 믿지 못한 것은 박치오름 아닐까.

 

민용준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정확히 임바른과 대칭지점에 있다. 박차오름의 분노를, 정의를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민용준이 가진 힘일 것이다. 아니다. 임바른이 지키고자 하는 법관으로서의 소신과 원칙일 것이다. 법관으로서 지켜야 할 법이다. 매일 이상과 양심을 배반하는 듯한 판결에 분노하고 좌절하면서도 꾸준히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지씩 두려워 않고 해 나간다. 그럴 수 있도록 박차오름의 뒤를 지탱해 준다.

 

사람 사는 곳이다. 옳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맞다고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저마다 복잡하게 욕망이 뒤엉킨 가운데 성공하는 것도 승리하는 것도 얼핏 부조리해 보이는 그런 욕망들이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한다고 양심에만 충실하게 행동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혀 기대와 디른 결과에 혹은 의심하고 혹은 분노한다. 어쩌면 양심을 지키고자 한 자신의 행동이 틀린 것일 수 있다. 지탱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아직 세상에는 희망이 있다.

 

드라마의 전반부는 애써 겨우 고백하고 늦지 않게 약속장소로 가기 위한 정보왕의 분투기였다. 참으로 보기에도 처절한 여정이었건만 기껏 말 한 마디 잘못해서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처절했고 안타까웠고 어이없었고 한심했다. 물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다.

 

법을 지켜야 할 판사들이지만 그보다 가까운 것이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하필 사법농단이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도 한두명씩 박차오름의 편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상사를 잘 만났다. 물론 같은 배석 선배 역시. 그래도 법원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드라마만 봐서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드라마가 현실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재미있었다. 어설픔도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