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 착하지 않은 약자와 악하지 않은 강자, 박차오름 돌아오다
약자라서 선한 것도 아니고 강자라고 악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혼란에 빠진다. 선하지 않은 약자들에 분노하고, 악하지 않은 강자들에 감격한다. 악한 약자들에 환멸하고 혐오하면서 선한 강자들을 추종하게 된다. 하지만 강자와 약자라는 것은 강하고 약한 개인이 아닌 그런 구분이 존재하는 현실의 문제다. 사회의 문제이며 구조의 문제다. 어차피 개인이 선하다면 힘을 가졌든 못가졌든 선할 것이고, 개인이 악하다면 힘을 가졌든 못가졌든 악할 것이다. 그러면 왜 그들은 그런 힘을 가졌는가. 혹은 가지지 못했는가.
아이들의 문제는 결국 어른들의 문제다. 당연하다. 강자와 약자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더라도 대부분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에 속해 있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재벌의 아들이고 정치가의 손자라 할지라도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무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가르쳐야 한다. 보호해야 한다.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어른의 의무다. 그런데 정작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런 사회적 책임은 나몰라라 하며 그렇게 사회의 주변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비난하기 바쁘다. 아이들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올바르게 자랄 수 있다 하면 어른이 왜 필요하겠는가. 어른의 역할이란 무엇이겠는가.
단순히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처벌하는 것만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고민하려 한다. 오히려 그 대상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아닌 그들을 일탈로 몰아가는 주변의 어른들이다. 쉽게 차별하고, 쉽게 편견으로 대하며, 쉽게 이익의 수단으로 도구로 보려 하는. 그래서 어렵다. 차라리 그냥 잘못을 저질렀으니 소년원에 보내 교정을 받도록 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잘못할 때마다 때리고 욕하고 그래서 고쳐지지 않으면 사회의 주변으로 내동댕이 친 채 돌아보지 않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 그리고 실제 많은 어른들이 그러고 있다. 그러고보면 박차오름도 임바른도 사회적으로 어른이라 하기에는 아직 한참 미숙할 텐데도. 법원이라는 어른의 사회에서 그들 역시 사고만 저지르는 문제아들이기도 하다.
그래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옆에서 지켜봐주며 기대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온전히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보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어른이 되려는 이들도 있다. 전에도 말했다. 세상은 다수의 악인과 소수의 선인이 만들어간다. 소수의 선인이 다수의 악인을 선으로 이끌며 만들어져간다. 대기업이 막대한 돈을 써가며 사회사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그런 선인들의 눈을 의식해서다. 그런 소수의 선인들을 지지하며 따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다수의 사람들을 떠올려서다. 그래도 작은 한 걸음이 아주 조금이나마 사회의 한 구석을 미미하더라도 더 낫게 바꾸고 있다. 그렇게 믿고 있다.
조금은 스테레오 타입의 평이한 이야기였다. 주제도 평이했다. 그런 점에서 판사로서 재판정에서 법복을 입은 모습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판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법 이전에 인간의 상식으로서. 그래서 이 드라마는 판사라는 인간을 그린 인간드라마인 것이다. 박차오름이 돌아온다.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이루어줄 힘이 아닌 끝까지 자신을 곁에서 지켜봐 줄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며.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다만 한 사람,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는 한 사람이 그를 강하게 진실하게 만들어준다. 벌써 회수도 이렇게 진행되었다.
괜히 한 걸음 더 돌아왔다. 그만큼 솔직하다. 그만큼 모든 것이 직구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한심한 것도 귀여운 것도 모두 무조건 직구다. 그래서 맞으면 크게 맞지만 진심이 담기면 그보다 더 무서운 무기도 없다. 싸늘했던 이도연의 마음이 정보왕의 부담스러울 정도의 솔직함에 다시 풀리고 만다. 이 커플도 무척 흥미롭다. 무엇보다 이도연의 말처럼 순진할 정도로 순수한 정보왕의 진심이 그를 응원케 만든다. 여름도 깊어가고 장마도 시작되었는데 법원만은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중이다. 좋은 시절이다. 여기나 저기나 어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