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가 왜 그럴까 - 기만의 대가, 진실과 비로소 마주했을 때
역시나 평범해졌다. 더이상 이영준과 김미소 사이에 줄다리기 같은 것은 없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균형마저 사라지고 일방적인 관계만이 남게 되었다. 이영준은 아주 마음좋은 키다리아저씨이고 김미소는 아주 운좋은 신데렐라다. 하지만 이영준 가족이 화해하는 과정은 꽤 볼 만 했다.
대가없는 평화란 없다. 화해도 없다. 행복도 없다. 만족도 없다. 그러니까 김미소도 결국 과거의 인연 때문에 이영준이라는 봉을 잡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이영준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 왔던 것이었다. 김미소가 과연 중간에 포기하고 도망쳤더라도 이영준은 그런 김미소를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과거의 잘못을 딛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만한 고통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당장 죽을 병에 걸렸는데 약먹는게 쓰다가 거부하면 그냥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는다고 완전히 없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형 이성연의 말이 그래서 인상깊다. 나 스스로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되었어야 했는데 이영준의 어설픈 오만으로 인해 평생의 절반을 이영준을 미워하고 원망하는데만 허비하고 말았다. 있지도 않은 누군가의 잘못을 굳이 떠올리며 원망하기만 하는 시간이란 얼마나 허망한다.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도망쳤더라도 그를 극복하기 위한 시간들은 자신을 위해 의미가 있다. 더구나 모두가 하나가 되어 진실을 덮으려 했던 그 마음으로 이성연이 과거의 기억을 이겨내도록 가족이 함께 도왔더라면 더이상 후회나 자책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결국에 당장 잠시는 덮을 수 있어도 끝내 영원히 없었던 일로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러면 그동안 없었던 것처럼 망각과 기만으로 묻어 왔던 시간들까지 보상처럼 이자처럼 쏟아지듯 함께 찾아오게 된다. 그만큼의 후회와 그만큼의 자책과 그만큼의 허무가 더 큰 상처가 되어 모두를 짓누른다. 그래서 더 발버둥치다가 길을 잃게 되고 그래도 여전히 고집을 부리다 끝내 다시는 원래의 길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다행히 다른 재벌드라마와 다르게 이영준네 가족은 서로를 끔찍이 위하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누구도 이성연을 혼자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
그러고보면 이영준이 김미소에게 약점을 보인 것도 바로 그 진실을 스스로 외면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했다면 처음부터 그들의 관계는 지금처럼 일방적이었을지 모른다. 이영준은 감추고 김미소는 밝히려 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궁지로 내몰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도 더 재미있었던 것이었지만. 그런 정도 패널티는 있어야 일상의 연인처럼 재미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치 왕이 후궁을 간택하듯 자신의 감정을 전하는 이영준에게 김미소는 어떻게 응할 것인가. 아직 남은 회수가 조금 되는 것 같은데 진도가 빠르다. 더이상 밀고 당길 일도 없고 어떤 중요한 큰 사건이 남아있는 것 같지도 않다. 힘이 빠질까? 일단은 지켜보고. 원래 남의 사랑놀음은 질색이라.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