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 방관자적인 인물들,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

까칠부 2018. 7. 16. 08:50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시대배경도 흥미롭다.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런데 도무지 드라마에 집중할 수 없다. 집중은 커녕 자꾸만 지루해하고 지겨워하는 자신을 느끼게 된가? 어째서? 왜?


아마 이번 4회차 마지막 장면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고보면 급박하게 달려가는 역사의 시계와 달리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유진 초이(이병헌 분)나 구동매(유연석 분)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그 시대 속으로 뛰어들 것처럼 보이던 고애신(김태리 분)마저 여전히 방관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 시청자들에게 불편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 따위는 절대 없을, 하루하루가 암울한 불길하고 불운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와 동화되는 순간 주인공들의 삶 역시 암울한 시대를 닮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대중드라마를 찾는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당장 그렇게 암울한 시대를 지나더라도 끝내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기도 어렵다. 그래서 일부러 주역들은 시대와 유리시킨다.


조선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든. 조선 백성들의 삶이야 장차 어떻게 바뀌든. 그래서 유진 초이는 조선인이면서 미국인이다. 구동매 역시 조선인이면서 일본인이다. 고애신 역시 조선인이기 이전에 명문가의 규중처녀다. 신분이라는 벽을 두른 채 저마다 자기만의 창으로 한 걸음 물러서 시대를 지켜보기만 한다. 이방인이기 때문에도 유진 초이나 구동매나 정작 당시의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고애신 역시 땀내나는 조선인의 삶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그들의 삶은 배경이 되는 조선과 조선 백성들과 달리 이질적으로 겉돌고 있었다. 배경과 인물들이 유리되며 그만큼 더 주인공들에 이입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역사의 시대다.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 지 많은 이들이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배웠고 이미 알고 있다. 벌써 인물과 사건들에 대한 판단까지 끝나 있는 상태다. 이 놈은 나쁜 놈, 저 놈은 그나마 덜 나쁜 놈, 이 분은 매우 훌륭하신 분. 하긴 그래서 더욱 그같은 섣부른 판단을 피하고자 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시청자의 선입견으로 인해 작가의 의도가 왜곡되는 것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 시대는 그저 배경으로 족하다. 그보다는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그들의 주변에 일어나게 될 사건에 더 집중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시대배경이라는 것이다. 시청자 역시 결코 방관자로만 머물고 있을 수는 없다.


차라리 당시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낙후된 조선을 경멸하며 끝까지 방관자로 남고자 했던 김희성(변요한 분)의 캐릭터 정도가 답답함과 함께 어쩐지 시대속에 있는 듯한 실감을 느끼게 한다. 김희성의 삶 또한 조선의 다수 백성들과 유리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현실과도 유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예 방관자로서 김희성은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시청자를 향해 쏟아내고 있었다. 10년만에 돌아온 고국 조선이 반갑고 그립기보다 지겹고 짜증나기만 한다. 그런 경박함조차 어쩌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일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유진 초이나 구동매나, 심지어 고애신조차 조선이 어찌되든 무슨 상관이던가. 총을 들고 저격에 나섰던 것도 2회에서 딱 한 번이 끝이었었다.


말하자면 액션이 없다. 만남은 있지만 부딪힘이 없다. 시대가 시대인 탓도 있겠지만 차라리 비참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정면으로 서로와 부딪히는 장면이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김희성을 제외한 주요인물들은 여전히 멋있기만 하다. 영상도 아름답다. 상당히 공을 들인 듯한 영상들이 중요한 고비마다 지루할 정도로 정교하게 치장되어 보여진다. 그래서 더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다. 김은숙 작가의 다른 드라마들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이제까지 여러 드라마들에서 주인공들은 한심할 정도로 자신의 속내를 있는대로 쏘아내며 서로에게 부딪히고 있었다. 그것이 인물들을 생동감있게 더 큰 매력으로 시청자들에 다가가게 해주었다. 기에 비하면 너무 폼을 잡는다. 인물도 배경도 영상도 너무 장식적이다.


물론 작가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 조금만 더 참고 지켜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있다. 이대로 그저 영상만 아름답게 밋밋한 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서두가 너무 길었다. 김희성과 고애신이 만나기까지가, 유진 초이가 복수에 나서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비로소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진심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시대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시대와 함께 울고 웃고 화내고 갈등하며 함께 호흡해야 한다. 실제의 시대 속을 허구의 인물들이 살아가야 한다. 그런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터다.


확실히 작가에 대한 신뢰가 더 큰 더 많은 인내를 가능케 하는 모양이다. 원래대로라면 지겹다 여긴 순간 더이상 보기를 포기하고 말 텐데. 마치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의 심리와도 같은지 모르겠다. 이제 5분을 기다렸으니 1분만 더 기다리면. 어차피 9분을 더 기다렸으니 10분만 기다리면. 그래도 버스만 제 때 와준다면 아주 헛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역사드라마가 그래서 어렵다. 정확히 시대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 사건보다 특수한 시대적 배경 위에서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간과 삶을 그려낸다. 너무 많이 알아도 걱정이다. 역사가 바로 스포일러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