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 -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사실적인 법정드라마?

까칠부 2018. 7. 31. 10:06

대놓고 말한다. 재벌을 처벌할 수 없다. 재벌이 역차별당한다. 그러니까 선고유예에 맞춰서 판결문을 써야 한다. 변호사와 검사와 판사가 한통속이 된다.


사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래도 설마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사회의 마지막 양심이자 희망은 법원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사법부야 말로 이 사회의 법과 정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당히 사법부의 독립을 정치권과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서도 그에 대해 전혀 조금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느 사회나 소수는 반드시 존재한다. 일부 판사들이 부끄럽게 여긴다고 사법부 전체가 그것을 부끄러워 한다는 근거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속물이다. 하긴 그러자고 어려운 사법시험도 치렀을 것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상당한 돈이 들었을 테고 들인 노력도 적지 않았을 텐데 굳이 그렇게까지 사법시험을 치러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연 한수호가 돈을 받고 재판을 거래한 사실을 알았을 때 어머니는 분노하거나 부끄럽게 여겼을까? 한강호의 기억이 맞다면 이미 어머니는 공부잘하고 그래서 장래가 기대되는 한수호를 위해서 그의 죄를 덮고 애꿎은 한강호를 죄인으로 만든 전력이 있었다. 죄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공부 잘해서 사법시험도 합격하고 판사까지 되었으면 그것으로 옳다. 아무리 법을 어기고 돈을 받고 재판을 거래했어도 남들보다 위에서 위세부리며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옳다. 


한 마디로 가족부터가 그것을 바란다. 부모부터 그것을 바라고 자식들에 법공부를 시키고, 배우자든 자식이든 그렇게 얻은 가장의 지위와 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다못해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마저 그것을 부러워하여 자신들도 그와 같은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일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유로 개천에서 난 용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렇게 한 아들은 내팽개쳐서 전과자로 만들고, 다른 한 아들은 양심을 판 법관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임을 과시하려 한다. 바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고나 할까?


과거 범죄피해자의 가족이면서 스스로 피해자들을 위한 킬러가 되고 싶다는 바람까지 가졌던 송소은이 어차피 법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한수호와 만난다. 한강호에게 법이란 정의가 아니다. 어차피 세상은 정의같은 것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송소은에게는 그나마 법이라도 정의로워야 한다. 절박함이다. 법마저 정의롭지 못하다면 자기가 직접 나서서 가해자들을 응징해야 할 지 모른다. 송소은의 절박한 정의가 한강호의 체념과도 같은 타산과 만나며 어떤 시너지를 내게 될까. 오히려 법을 배우지 않은 범죄자이기에, 엘리트코스를 밟은 적 없는 주변인이기에 그가 할 수 있는 판결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수호가 벌써부터 납치범들로부터 탈출해 도망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죽지는 않겠다. 그러나 결국 다시 한강호 앞에 나타나게 된다. 아니면 운명이 바뀌게 될까? 왕자와 거지처럼 한강호와 한수호의 운명이 다시 한 번 서로 갈리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머니는 또다시 선택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이 삐딱한 탓일 것이다. 정치사회면을 너무 많이 봤다. 정의로운 검사같은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법정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의를 믿고 싶어한다. 드라마에서만 검사와 판사들은 정의를 이야기한다. 가장 현실적이다. 뜻밖에 만족하며 보게 되는 이유다. 진짜 검사같고 판사같다. 개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