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 - 의사의 실수, 의사도 사람이다!

까칠부 2018. 8. 7. 01:42

아마 어느 만화의 대사였을 것이다.

 

"의사는 죽인 환자의 수 만큼 성장한다."

 

당연하다. 나사 하나를 깎으려 해도 실패작만 수도 없이 만들고 나서야 겨우 쓸만한 나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마저도 더 정밀한 특수한 용도의 나사를 요구대로 어김없이 만들어내려면 그 몇 배의 경험이 필요하다. 여기서 경험이란 시행착오를 말한다. 그마저 한 번에 실패없이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아직 인간이 확실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가 우주고 다른 하나가 인간이다. 의학은 지금도 나날이 빌전하고 있다. 그 말은 곧 인간이 아직 인간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어떻게 해야 인간을 확실하게 살리고 또는 죽일 수 있는지. 그 수많은 가능성과 변수 속에서 의사는 수도 없이 환자를 상대해야 한다. 과연 의사라고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미리 대비하고 대처하고 통제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세상에 죽는 사람이란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인턴이다. 레지던트다. 팰로우다. 하긴 대학교수고 과장이라고 모든 가능성에 대해 해박한 것은 아니다. 아주 희박하고 낮은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칫 모르거나 바로 떠올리지 못한 채 지나칠 수 있다. 유사한 다른 경우와 얼마든지 혼동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선우창이 한 말 그대로 의사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는 의사들이라먼 어떨까? 그렇다고 실력을 갖출 때까지 아예 환자를 보지 말라고 한다면 영영 실력을 기를 기회를 잃고 만다. 새로운 의사가 성장할 수 없다. 그런데도 매번 의사의 실수나 잘못만을 문제삼는다면 어떤 의사가 견딜 수 있을까? 일도 힘들고 리스크도 큰데 책임에 대해서까지 가혹하다. 주경문이 말하는 투자란 단순히 금전적인 것만이 아닌 그같은 사회적인 인식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의술로 돈을 벌려면 간단하다. 돈되는 환자만 받으면 된다. 돈 안 되는 환자는 내쫓으면 된다. 의사가 환자를 죽이지 않으려면 역시 그 방법도 너무 간단하다.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환자만 치료한다. 살리기 힘들 것 같으면 처음부터 포기한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먼저 덤비지 않으면 죽이는 일 또한 없다. 물론 나 자신이나 내 주위에서 그로 인해 불행한 일을 당하면 무척 화나고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런 실패가 쌓이며 인간은 죽음이라는 공포와 싸울 수 있는 지식과 경험과 기술을 쌓아가게 된다. 한 사람도 죽이지 않은 의사따위 없다. 그런데도 단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매번 의사를 죄인취급한다면 과연 어떤 의사가 남아서 그 힘들고 위험한 일을 계속하려 할 것인가. 그것이 사회적 비용이라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정도는 사회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사회 일반의 눈높이에서 의사를 비판하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의사의 입장에서 그런 사정따위 아랑곳않는 사회를 질타한다. 주경문이 말하는 지방의 의료원이란 아마도 진주의료원을 빗댄 것일 게다. 홍준표 전경남지사의 정책 가운데 대중의 호응을 얻었던 몇 안 되는 정책 가운데 하나다. 의사가 환자를 속인다. 의사가 환자의 돈을 도둑질해간다. 의사가 받는 높은 연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의사들이 하는 일에는 연봉만한 가치가 없다. 만에 하나 죽어가는 자신을 살리게 될 이들인데 그들에게 주어지는 돈이 너무 아깝다. 그래서 돈이 안된다도 의사들의 손을 놓아 버린다면 그 피해는 누가 보게 될까? 병원을 의사를 돈으로만 도구로만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비단 사장인 구승효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돈만 많이 벌고자 한다면 의사가 아니더라도 직업은 많다. 하물며 의료사고의 위험도 높은 과목은 단지 연봉만 높다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에 비해 아주 많은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남들 못하는 공부까지 해가며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에 뛰어든 이들인 겉모습이야 어쨌든 사람을 살리면 기뻐하고 살리지 못하면 상처받는 이들인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죄인인 양 대상이 되어 이리저리 휘둘려야만 하는 것인가. 사람이기에 미숙했고 오판했고 실수를 저질렀을 뿐 사람을 살리려는 의사가 죄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건강보험료 인상에 오래전부터 찬성해 온 이유였다. 저소득층에는 지금보다 더 깎아주더라도 아직 여유가 있는 나같은 사람은 지금보다 얼마간 더 내더라도 의사와 병원에 충분한 정당한 대가가 지불될 수 있어야 한다. 힘들고 위험한 만큼 보상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인 만큼 사람의 목숨만큼의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인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우리 사회는 의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만큼 충분한 대가를 지급하고 있는가. 물론 그렇다고 아예 진실을 감추고 반성하고 앞으로 더 나갈 수 있는 기회마저 박차는 것은 문제다. 그렇더라도 과연 사회는 대중은 자신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소통을 포기한 두 집단이 있다. 의사들은 구승효를 인정하려 않고 구승효 역시 의사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모를 것이다. 알려고도 않을 것이다. 이해시키려는 최소한의 노력마저 포기한다. 이노을 한 사람 뿐이다. 의사로서 의사의 논리에서 벗어나 의사들을 볼 수 있다. 또 한 사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듯한 예진우도 있다. 평행선을 달린다. 서로 자기 주장만 한다. 어떤 진심도 진실도 없이 위력과 술수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극한의 대립이 과연 무엇을 낳게 될까.

 

해피엔드를 기대하기에는 현실의 의료문제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루아침에 몇몇에 의해서 해결되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다. 병원장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도 몇 발짝 물러나 있다. 이제 와서 궁금해하는 사람마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어쩧게 그들은 무엇이든 자신의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까. 어떤 장면이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할까. 드라마의 의도이며 주제일 것이다.

 

작가의 전작과 달리 휘몰아치는 구성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하필 내용도 액션보다 텍스트 위주다.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배우들의 연기가 드라마에 빨려들게 한다. 주인공의 동선을 쫓는다. 시선과 시야를 따라간다. 드라마의 인물들에게는 자신의 문제다. 시청자가 사는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미있다. 생각할 거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