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판사님께 - 철저히 대중인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판사가 울다
법이란 권력이다. 물이 가는 길을 만들고 고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최초의 권력은 그 물을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쓸모가 있도록 다스리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사람이 둑을 쌓으면 물길이 갇히고, 따로 땅을 파서 물길을 내면 다시 그곳으로 흐른다. 그런데 그것을 어느새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그 법을 손에 쥐고 있다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법이라는 도구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정의다. 그리고 그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자신의 의무이기까지 하다. 모든 사람들이 의심을 품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 외치는 와중에도 태연스레 법원과 관련한 이들에 대해서만 영장발부를 거부하는 현실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내가 법을 휘두르는 것이지 법이 나를 휘둘러서는 안된다. 같은 이유로 그동안 경찰들도 수많은 사건들을 자신들에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은폐하거나 축소하는데 앞장서 왔다.
그러면 판사들과 검사들만 잘못인가? 사법시험 존치논란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용이 된다. 그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수입이 많다는 이유로 용이라 부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기도 용이 되고 싶다. 자기들도 저들이 누리는 것들을 같이 누리고 싶다. 질투다. 탐욕이다.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법률공부도 한다. 당장 한수호형제의 어머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도대체 판사가 무슨 돈이 있어서 한강호가 사고칠 때마다 그 많은 합의금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당연하게 판사가 되었으니 돈도 많겠거니. 돈도 많이 벌 수 있겠거니. 그러니까 판사 아들 하나 길렀으면 다른 문제들도 다 해결된다.
남들 위에서 군림하며 판단한다. 저들과는 상관없다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판결을 내린다.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가 한 자리에 모인다. 법조인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모여서 상의도 하고 합의도 하고 모의도 한다. 법은 그들의 무기다. 그들의 도구다. 그들의 수단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통해서 일반 대중과 분리될 수 있다. 특권의식마저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연스러운 자신들의 권리로. 어째서 법원은 검찰은 그동안 그토록 대중을 정의를 무시하며 그토록 월권과 전횡들을 저질러 왔는가. 너무 적나라하다고나 할까.
오히려 법조인이 아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송소은은 판사라기보다는 피해자의 가족에 더 가깝다. 한강호가 하는 말은 그런 점에서 판사가 아닌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판사이기에 알 수 없는 대중의 직관적인 감정이며 정서들이다. 법이 무에 그리 대단한가.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의 사람들인 것을. 지금 자신의 앞에서 혹은 주위에서 실제 숨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인 것을. 한강호가 운다. 판사로서가 아니라 그냥 피해자와 같은 평범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확실히 아무리 봐도 한수호 형제의 문제는 어머니가 발단이었다. 하긴 많은 어머니들이 그런다. 열 손 가락 물론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하지만 안 아픈 손가락은 없어도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아이들은 당연히 부모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간다.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형제가 과연 화목할 수 있을까? 바른 인성을 기를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한 편으로 더 이상 아이들을 기르는 문제를 부모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아무런 자각없는 무심한 한 마디에 아이들은 상처입고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자신을 노리는 납치범의 존재로 인해 한수호는 정작 한수호가 되지 못하고 구경꾼이 되어 자신이 된 한강호의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으면서 한강호가 자신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헤프닝들을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한수호는 무엇을 보게 될까. 또 무엇을 깨닫게 될까. 무엇보다 공중파 드라마로서 한수호와 한강호 형제는 마침내 화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한수호를 대신하면서 한강호는 과연 무엇을 깨닫고 어떻게 자신을 바꾸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까.
욕망이 욕망과 부딪히고, 증오가 증오를 옭아매고 그리고 사랑은 사랑으로 서로를 이끈다. 검사 홍정수는 오상철과 함께 한수호를 노리고, 오상철은 아버지를 치는 일에 홍정수의 도움을 청한다. 송소은의 법에 대한 순수함이 법에 문외한인 한수호에게 이끌린다. 이 또한 절묘하다. 대부분 시청자들 또한 송소은과 마찬가지로 법을 불신하고 무서워하며 한 편으로 의지하는 평범한 법감정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다. 한수호가 벌이는 수많은 사건들에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법원이 이랬으면. 판사들이 저랬으면.
한강호와 한수호를 동시에 연기하려니 윤시윤의 연기에 조금 힘이 들어간 듯 보인다.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유영은 나이를 의심케 할 정도로 원숙한 연기와 천진한 소녀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이유영을 보는 재미에도 즐겁게 보고 있다. 판사가 운다. 자기가 판결한 사건의 피해자 가족 앞에서 판사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상투적이지만 그래서 상투적인 것이다. 현실의 수많은 판결과 판사들을 욕하면서.
법을 능욕한다. 판사와 법정을 조롱한다. 검사와 변호사의 실체를 까발린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현실에서 여러 뉴스들로 접하게 되는 법의 실체가 그러했으니. 정의로운 검찰과 법원이란 동화에도 나오지 않을 허튼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한 편으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