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 그래도 그들은 사랑하며 살아간다
모신나강에 대한 농담 가운데 이런 게 있다.
"모신나강을 쏘다가 어깨가 빠지면 반대쪽으로 쏴서 맞추면 된다."
하긴 당시 볼트액션 소총들의 반동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기는 했다. 체구도 작은, 더구나 여성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길기까지 하다. 사실 성능만 놓고 보면 독일의 게베어나 오스트리아의 만리허, 영국의 리엔필드쪽이 더 좋았을 텐데. 당시는 러시아의 공업력으로 생산이 불가능해서 외주로 생산하던 시절이라. 물론 러시아제 소총답게 신뢰성 하나는 최고 수준이었다. 여러모로 아쉬운 조선의 현실을 고려했을 수 있다.
헤어지는데는 저마다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사랑하는데는 한 가지 이유면 충분하다. 사랑하기까지 저마다 수많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사랑하고 나서는 한 가지 이유면 충분한 것과 같다. 사랑하니까 함께 있고 싶다. 사랑하니까 헤어지고 싶지 않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는 그래서 거짓이다. 더이상 함께할 수 없으니, 함께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더 좋으니 결국 헤어지는 것이다. 핑계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애신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들에 대해서. 그로 인해 끝내 상처입을지 모르는 자신이 두려워졌다. 그로 인해 상대를 상처입힐지 모르는 자신이 두려웠었다. 아니면 그로 인해 그만큼이나 소중한 지금까지의 인연들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될 지 모른다. 지금 자신은 꽃으로서 투사로서 무엇보다 우선해서 지켜야 할 소중한 대상이 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유진 초이는 지키기 위해서라도 놓아주어야 한다. 누군가 그녀의 집 주변을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녀를 지키고 싶다. 그녀를 돕고 싶다. 핑계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느끼며 마지막까지 함께이고 싶다. 그를 붙잡고 싶었다. 그를 붙잡고 그와 마지막까지 함께이고 싶었다. 크고 무겁고 반동까지 세다. 아, 취소다. 그래서 유진은 하필 모신나강을 고애신에게 선물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가 돌아왔고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총이 아닌 그가 내민 손을 잡은 것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영원한 것은 아닐지라도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서로에 대한 간절한 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리도 설레고 애닲고 즐겁고 행복한 것을.
시대야 어떠하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저 사랑하며 살아간다. 미워하는 사람을 그저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간절히 바라고 그리는 마음 또한 집요하게 탐욕하는 욕망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사는 곳에 언제나 일상으로 존재하는 사람의 마음이고 감정이고 욕망이고 기대와 희망이다. 그래서 사람은 살고 또 살아간다. 비장한 시대에 비장한 마음을 품고도 고소하게 전부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욕망한다. 히나와 그녀의 아버지 이완익 사이에 흐르는 원망과 탐욕처럼. 히니와 구동매가 서로를 보는 미묘한 눈빛처럼. 상관없이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늘어진다. 역사는 숨가쁘게 흐르지만 그들의 시간은 일상으로 흘러간다.
아무래도 구동매가 불안하다. 하필 죽은 사람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진은 고애신을 찾아가 총을 건네는데 구동매는 들을 리 없는 고애신의 죽은 부모를 찾아가 넋두리를 하고 있다. 어차피 자기의 몫은 아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사랑이 아니다. 차라리 자기가 내뱉은 모진 말이 아직도 고애신에게 상처가 되어 남아 있으면. 저격수가 되어 도망치던 그녀를 쏘았던 지붕의 높이가 눈에 밟힌다. 사실 조선에도 일본에도 그의 자리는 없다. 조선에서 비천한 백정의 신분이었듯 일본에서도 무시당하는 낭인의 신분일 뿐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며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가 돌아갈 그의 집은 과연 어디일까?
김희성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출신 자체가 굴레인 그에게 선택의 여지란 그리 많지 않다. 단 하나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그것이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었다. 김희성의 바쁜 움직임이 고애신의 앞에 놓인 길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아니 그보다 김희성은 자신의 출신이라는 주박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아들도 손자도 아닌 김희성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오롯이 설 수 있게 될 것인가? 조부들끼리 정한 약혼이 아닌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려 한다. 끝내 이루어지지 못할 감정일지라도.
의외로 역사적인 부분을 날카롭게 건드리고 있다. 여전히 조선사회에 반상의 구분이 남아 있는 것처럼 일본인 사이에도 신분과 계급의 차이는 분명하다. 제국주의 일본이 비단 조선과 조선인만 침탈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인들도 일본의 지배자들에게는 마찬가지 대상에 불과했다. 강자의 편에 붙어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매국노들처럼 그들의 정의와 역사에 평범한 백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짓밟고 빼앗을 수 있다. 딸마저 수단으로 여기는 이완익처럼.
지나치게 진지해지거나 심각해지지 않는 사소한 농담들이 좋다. 시대와 주변의 엄숙한 상황에 짓눌리지 않는 어수룩한 일상들이 즐겁다. 그런 시대적 배경마저 그들을 위한 장식이 되어 준다. 낭만이라 부른다. 그런 시대이기에 그들은 그렇게 사링할 수 있다. 수줍으면서 당당하고 솔직한 고애신이 좋다. 김태리보다 더 예쁘다. 그들은 그 순간에도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다. 더운날 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