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판사님께 -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방법
그러니까 상대 역시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만 인정할 수 있으면 된다. 어차피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선생도 완벽한 학생도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이 어느 쯤엔가 있다. 조금은 허술하고 조금은 한심하며 조금은 밉고 조금은 사랑스럽고 조금은 고마운. 너무나 뻔한 이야기다. 그래서 얼마나 좋은가와 얼마나 나쁜가. 내가 얼마나 좋고 훌륭한가와 내게 얼마나 나쁘고 엉망인가.
한강호에게 송소은은 구원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올곧고 믿고 따라주는 사람이 지금껏 한 명도 없었다. 부모조차도 아니었다. 형제는 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 그로 인해 자기가 상처입을 일도 없었을 테니. 그럴 줄 알았다는 태연한 경멸과 무시가 더욱 그를 자포자기로 몰아갔다. 그런 식으로 빤히 자신을 보고 있으면 기대를 채워주고 싶지 않은가.
화해까지는 아직 멀었다.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로 인해 자기가 입은 상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 상처입으면 어머니도 상처입는다. 그래도 조금만 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었더라면. 그래도 좋은 점도 있고 고마운 점도 있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이리 서로 사랑하면서도 미운 때만을 더 간절히 떠올리고 마는 것일까. 어쩌면 한강호와 한수호 형제도 거기서 화해의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흔한 비극으로 드라마를 끝내거나.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탐욕과 그를 위한 집요함이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함이었다. 아버지에게 배운 그대로 아버지에게 돌려준다. 선후배도 없다. 오히려 그것을 감탄하며 부려운 눈으로 보는 재벌 2세까지 있다. 환멸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밖에 달리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런 아버지를 닮는다. 아버지의 방식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도 잡을 수 없다. 오상철의 악은 그런 점에서 한 편으로 슬프기조차 하다. 그들 부자 사이에 화해란 있을까.
그럼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전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니까 그렇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어떻게 당사자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교육을 진행시킬 수 있을 것인가. 시각장애를 의식하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라는 말은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이다. 세상이 아직 시각장애인에 대해 - 아니 장애인 자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차별을 일상으로 저지르는데 어떻게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머니가 과연 처음부터 악의를 가지고 전과를 몇 개나 가지도록 과격하게 세상과 부딪히려고만 했었을까.
그래도 그 사실을 알기 위해 판사가 직접 놀이기구에서 눈을 가린 채 걸어서 내려오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과연 실제는 어떠한가 서류만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며 확인하고 있었다. 모든 피의자들은 서류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다. 하긴 현실적으로 그 많은 사건들을 일일이 판사가 몸으로 뛰어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한수호를 노린 악의가 인과응보로 전혀 엉뚱한 한강호에게 돌아오려 한다. 어쩌면 한강호 역시 한수호가 저지른 잘못들과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한강호는 어떤 방법으로 한수호의 위기를 타개할 것인가.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 남은 이야기다. 한수호를 향한 위기의 너머에 또다른 악의가 숨어 있다. 좌충우돌하며 자기의 길을 찾는다. 모두를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