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 그들의 대의, 그들의 인정, 그들이 머무는 자리

까칠부 2018. 8. 26. 06:55

대부분 사람들은 말한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래서 핑계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김영주가 밀고하여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도 가족은 있었다. 당장 고애신부터 김영주의 밀고로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로 자라야 했었다. 


대의란 크기에 대의라 하는 것이다. 정의란 옳기에 정의라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그보다 더 작고 덜 중요해 보이는 다른 가치들은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 하필 대한제국이라는 대의를 위해 유진 초이를 죽이라 시키던 조정관료 이정문이 그래서 가족을 위해 동지를 배신했던 김영주와 대비를 이룬다. 유진 초이에 대한 작은 의리보다 대한제국이라는 대의를 우선한다. 조국이라는 대의보다, 심지어 동지들에 대한 의리보다 가족에 대한 정을 선택해야 했었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최선이었는가.


유진 초이에게 조선이란 단지 고애신이었을 뿐이다. 자신을 살려주었던 황은산이었을 뿐이다. 그들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야 말로 그에게는 대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얼마든지 그들 앞에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다.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음을 알면서도 태연히 서 있을 수 있다. 비로소 황은산도 깨닫는다. 조선인이 아닌 미국인이 되어 돌아온 유진이었지만 그에게도 조선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생겨나 있었음을. 조선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하는 당위가 자라나 있었음을. 그것은 조선이 그에게 내어준 인연이었으며 선의였다.


누구보다 고애신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믿고 있었다. 조직의 지시는 따른다. 하지만 유진을 믿는다. 그래서 기꺼이 명령에 따라 총을 들고 그를 겨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대로 유진은 자신의 진심을 내보이며 황은산을 설득하고 아무일없이 돌아간다. 자신을 향했던 그들의 선의가 총알로써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유진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유진에게 있어 조선이라는 의미였다.


사랑하는 이가 있어 지킨다. 지켜야 할 소중한 이들이 있어 지켜야 한다. 작지만 커다란 의미다. 크지만 때로 한없이 작아질 수 있는 이유다.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야 할 사람도 없는 조국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점에서 조국인 조선은 물론 가족마저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이완익이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일 것이다. 이완익에게 지켜야 할 것이란 자신의 이익 밖에 없다. 아내도 자식도 없이, 태어난 조국도 없이, 심지어 때로 자신마저 그를 위한 수단으로 내던진다.


아무튼 김영주는 조금 더 솔직했어야 했다. 가족을 위해 동지를 배신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의를 저버린 행위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를 속이고 거짓말하는 가운데 그것을 진실로 여기게 되었다. 자기는 비겁하지 않았다. 비열하지 않았다. 하긴 덕분에 유진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잡았고 그 명예까지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구동매가 유진에게 빚을 졌다. 히나 또한 구동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내비친다. 구동매가 일본 공사 하야시의 편에서 이완익을 노린다. 혼자서는 어림도 없다. 새삼 배신자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깨닫는다. 유진이 느끼던 그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진은 미국에서도 조선에서도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있을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왔다. 자신의 조국과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어 왔다. 조선도 일본도 어디에서도 이완익을 환영하지 않는다.


김희성 역시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한다. 하필 신문이다. 그것도 한글신문이다. 참고로 경술강제병탄 전 대한제국에는 수많은 기업과 학교와 언론들이 있었다. 대부분 규모도 작고 유치한 수준이었지만 대한제국이 근대화하기 위한 자발적인 시도와 노력들의 산물이었다. 강제병탄 이후 이들 기업과 학교와 언론들은 대부분 조선총독부에 의해 폐지된다. 언론인의 길을 선택한 김희성의 앞날 역시 순탄치는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할아버지 고사홍이 김희성과의 혼사를 밀어붙이며 고애신과 갈등이 빚어진다. 고애신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전하면서 보수적인 고사홍은 결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김희성이 그 현장에 나타난다. 자신의 일이다. 자신의 혼사다. 고애신을 가지고 싶은 마음과 고애신을 돕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김희성은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까. 유진과 자신 사이의 악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고애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대상이 유진임을 아마 김희성도 어렴풋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남녀상열지사라. 아니 인간상열지사일까. 결국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인간이다. 그 역사에 치이면서도 그 역사를 살아가는 것 역시 인간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 미약하지만 그러나 대부분 인간은 오늘의 소중한 삶을 살아간다. 참 많은 일들이 있다. 드라마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