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 역사라는 예정된 불길한 결말, 그래도 살아가며

까칠부 2018. 8. 27. 10:26

하필 실제 역사가 배경이 아니었다면 무심코 다른 결말을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저리 열심인데. 저리들 필사적인데. 그래도 주인공인데 뭐라도 이뤄내지 않을까. 나쁜 놈들도 혼내주고, 오랜 복수도 마치고, 그리고 위태로운 처지의 나라마저 구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산다. 하긴 나라를 위하겠다는 선비들이 정작 군사훈련 받으며 몸놀릴 걱정부터 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니 과연 조선이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가 싶기도 하다.


어차피 그 끝을 알고 보는 드라마였을 것이다. 고애신이 그토록 간절히 지키고자 했던 조선은, 대한제국은 결국 1910년 일본에 강제로 병탄당한다. 이미 그 전에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나마 죽지 않은 이들은 기약없는 싸움을 위해 해외로 떠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조선에 남아서 일본과의 싸움을 이어간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러고보면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다. 끝내 대한제국이 망했어도 천만 넘는 조선백성 가운데 정작 목숨을 잃은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살았고 그리고 마침내 1945년 해방을 맞고 있었다. 고애신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완익과의 싸움은 적이라도 분명했다. 침략자인 일본과의 싸움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대상이 분명했다. 지금껏 자신을 고이 길러준 할아버지였다. 생떼같은 자식을 졸지에 잃고 어미가 누군지도 모르는 핏덩이를 거두어 지금껏 길러준 할아버지였다. 자신의 든든한 보호자였고 이해자였고 후원자였다. 하지만 그는 또한 조선이었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조선이란 나라처럼 전통이란 이름의 수많은 인습과 관성에 젖은 기득권 양반이었을 터였다. 조선에서 명문가란 그런 의미다. 고애신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위하는 그의 간절함과 그러나 조선의 인습을 앞세워 고애신의 앞을 막아선 모습에 예전 유진 초이의 물음이 교차한다. 그래서 고애신이 지키고자 하는 조선은 어떤 조선인가. 누구의 조선인가. 자신도 함께 살 수 있는 조선인 것인가.


시대가 바뀌었다. 그 사실을 고사홍도 안다. 그래서 더 고집을 세우는 것인지 모른다. 이대로 흘러가 버릴 것 같다. 이대로 모든 것이 뒤집혀 버릴 것 같다. 자기가 살았던 자기가 지키고자 한 조선이 있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당연하게 배우고 익혀왔던 모든 것들이, 자기가 그래서 그토록 완고하게 지켜왔던 당위와 질서가 하루아침에 모두 휩쓸려 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노인들이 고집이 세다. 지켜야 할 것이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버겁도록 많기 때문이다. 과연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그 시대에 발맞춰 걸어가려는 손녀 앞에서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붙들고만 있을 것인가. 고사홍의 허락 없이도 고애신은 자신의 발로 자신의 걸음을 앞으로 내딛을 수 있을 것인가.


유진이 무관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되고 고애신이 궁으로 불려간 그 순간 일식이 일어나며 분위기가 급변한다. 마치 그동안 시청자의 눈을 가리고 있던 행복한 일상의 필터가 한 순간에 걷혀진 것만 같다. 원래 그런 시대였다. 그런 암울하고 불길하던 시대였다. 대한제국은 하루가 다르게 망해가고 희망 역시 하루가 다르게 다해가던 시절이었다. 불길한 운명처럼 그런 시대가 젊은 그들의 앞에 놓인다. 어쩌면 고사홍의 진짜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늙은 자신들이 죽고 젊은 그들이 산다. 젊은 그들이 살아 내일의 희망을 이어간다. 대부분의 시대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을 위해 희생되어야 했다. 앞장서서 싸우다 죽어가는 것은 항상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이었다. 늙은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과 가치와 질서를 위해서.


분위기의 반전이 극적이다. 군데군데 소소하게 보이는 조선이라는 사회의 암물함도 세밀하게 그려진다. 김희성이 자신의 길을 가려 한다. 부모와 맞서며 부모를 설득하며 자신의 사랑마저 놓아 보내며. 그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그는 그토록 자신을 움츠려왔을 터다. 단 두 사람 자신을 인정하고 믿어주던 고사홍과 유진으로 인해서 그는 비로소 일어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의 앞에는 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참 힘들다. 그러니까 애써 잊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더 극적으로 일식을 등장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식의 모습이 얼핏 일본의 창천욱일기와도 닮았다. 그런 드라마다. 그런 시대다. 그런 앞날이 주인공들을 기다리고 있다.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그래도 희망이 있겠거니 마음졸이며 지켜봐야 할까. 잠시 꾸었던 고애신의 꿈처럼 그들도 행복할 수 있기를. 행복해질 수 있기를. 안타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