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명쾌하지 않은 불편함, 판이 커지다
총체적 난국이다.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 어느 쪽에 서야 하는 것일까? 시청자의 입장에서 온전히 자신을 이입하며 보기에는 누구 하나 멀쩡한 인간이 없다. 하다못해 사회의 정의를 위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언론의 민낯마저 까발리고 있다. 저따위 기자놈의 무죄를 밝히겠다고 굳이 유가족이 반대하는데 부검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느끼게 되는 불편함일 것이다. 심지어 주인공인 예진우와 이노을마저 온전히 선량하기만 하다 단정짓기 어렵다. 이노을은 몰라도 최소한 예진우는 개인적인 동기가 더 앞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뻔히 그런 것이 보이는데 주인공이라고 온전히 그 입장에서 응원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나마 나은 점이라면 그보다 그가 맞서려는 쪽에 더 문제가 많다는 정도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그나마 낫다지만 시청자인 자신을 대신하기에는 아무래도 껄끄러운 것이 있다. 아무리 그렇지 않아도 딸을 잃고 비통해하는 부모를 찾아가 부검을 설득하는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룰 위해서. 의사라는 자기 직위를 이용해서.
시작은 병원장 오세화였다. 주경문의 말처럼 사인이 불명확하면 성급하게 단정짓기보다 부검을 했어야 했다. 지레 부모애게 걸려온 전화에 의도를 넘겨짚고 굴복해 버렸다. 구승효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선을 그어 버렸다. 저 윗세계가 가진 힘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위가 먼저 알아서 움직여 준다. 거기서 예진우의 무리한 행동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된다.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그냥 넘어갔으니 자기라도 나서서 진실을 밝히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정의감에서라기보다 자기가 지지하지 않았던 병원장 오세화에 대한 반감과 첫눈에 반한 기자에 대한 호감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발단은 취재원을 배려하지 않은 기자의 무책임하고 일방적인 보도에 있었다. 누가 잘했다고 할 수 없이 그저 죽은 사람과 그 유가족만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 이노을은 총괄사장 구승효를 장례식장에 데리고 온다.
구승효는 얼마나 진실을 알고 있을까? 어디까지 알고 있고 따라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누구보다 저 윗세계와 자주 가까이서 접촉하며 그 생리에 대해 진저리쳐질 정도로 잘 알고 있다. 병원은 가만히 있으려 해도 사람이 병들고 다치고 죽게 되면 찾는 곳이 병원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휘말릴 때가 있다. 그는 상국대학병원의 총괄사장인가? 아니면 화정그룹의 일개 월급사장에 지나지 않는가? 현실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이것은 드라마니까. 드라마에서는 때로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도 당연하게 일어난다.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어려움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전쟁과 같다. 오랜 친구인 이노을에게 차마 함께 싸우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기자를 좋아라면서도 아직 그 이상은 다가서지 못한다. 동생 예선우가 오랜 장애로 인해 치명적은 폭탄을 몸에 가지게 되었다. 언제냐가 문제일 뿐 반드기 터지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이 치명적이다. 아직 예진우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정계와 재계까지 얽힌 한 죽음이 또 예진우와 모두를 위해 어떤 계기가 되어 줄까?
무리수라 여겨지는 이유는 차라리 병원도 의사도 기자둘도 아닌 그저 가족을 잃었을 뿐인 유가족에 자꾸 이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일이란 그렇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밝은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감춰진 어두운 부분이 있다. 오로지 선한 사람도 온전히 악한 사람도 없다. 그런 모든 것들을 보여주려니 오히려 혼란스럽다. 그냥 나쁜놈 좋은놈으로 나뉠 수 있는 세계가 더 쉽고 편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그 불편함이 더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으로는 선하고, 자신의 위치에 맞는 책임감도 사명감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적당히 오만하고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야망도 탐욕도 있고. 사실 그런 속물적인 부분들이 이해하기는 더 편하다. 그래서 그런 일상적인 욕망들과 거리를 두는 이노을과 예진우가 주인공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다만 그 행동 자체는 시청자가 이해하기에 그다지 명쾌하지 않다. 군상극이다. 차라리 장기 시리즈였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을. 물론 지금도 재미있다. 판이 커지고 있다.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