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판사님께 - 마지막 15분의 통쾌함, 정의롭지 못한 법정의 판타지
아, 통쾌하다. 이런 게 카타르시스다. 사실 무리수가 있다. 사람은 그렇게 선하지 못하다. 더구나 자신의 욕망과 꿈 안에서 결코 그렇게 선해질 수 없다.
아니다. 단지 더 독해질 수 없었을 뿐이다. 사마룡이 한강호를 평가하며 한 말처럼 박해나는 이호성처럼 더 철저하게 악해질 수 없었을 뿐이다. 자신들의 사건을 덮기 위해 한 사람이 죽었다. 자신이 지금 거짓으로 덮으려는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죄악을 가리기 위해 한 사람이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죽어야 했었다. 그 죄를 감당해야 한다. 그 순간 한강호는 진심이었다. 팬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판사도 무엇도 아닌 진실한 자신으로써 박해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냥 이기적인 것이다. 여기서 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후환이 두렵지 않았을까? 모든 진실을 밝혔을 경우 돌아올 불이익이 걱정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진실을 알아 버렸으니까. 자신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진실에 대해 이미 알아 버렸으니까. 아마 시간을 더 두고 재판을 진행했으면 다른 진술이 나왔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그 무게는 어쩌면 자신이 앞으로 겪게 될 현실의 문제들 만큼이나 절실하게 다가왔다. 양심이라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지켜본다.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이란 거울에 비춰 본다. 뒤늦게 자신이라는 정체에 고민하는 한강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솔직해질수도 당당히 앞으로 나설 수도 없다. 모든 것이 기만이고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한 사람의 양심이 자칫 묻힐 뻔했던 진실을 다시 세상에 드러낸다. 판사의 신문 아닌 진심어린 설득이 자칫 감춰질 뻔했던 죄악을 다시 세상에 까발린다. 법정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터져나온 진실에 사악한 검사도 교활한 변호사도 감히 한 마디 변명조차 하지 못한다. 그토록 오만하고 단당했던 검사가 한강호의 고발에 신음하듯 접수했다 말해야 한다. 진실이 승리한다. 정의가 승리한다. 다만 이번 한 번 뿐이라도. 다음이 없을지라도. 어차피 한강호는 한수호의 이름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그래도 좋지 않은가. 드라마에서라도 이런 통쾌함을 맛보고 싶었다.
드라마를 보는 이유다. 현실에서야 가능할까. 검찰이 법원이 얼마나 썩어있는가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알게 되었다. 검사란, 그리고 판사란 어디까지 양심이 썩어 있는가 그동안의 사건을 통해 모두가 알아 버렸다. 검사가 중간에서 없었던 일로 덮은 사건이 한둘이 아니다. 판사가 판결로 면죄부를 준 사건도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법원은 정의롭기를 바라니까. 판사의 판결은 정의롭기를 바라니까. 세상에 없는 정의가 그곳에는 있었으면 바라게 되니까. 그러니까 드라마에서라도 보게 된다. 다만 판사는 단지 양아치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판사가 아니라 판사와 얼굴만 같은 전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 또한 통쾌하다. 이 나라의 사법부란 고작 그런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판사들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유례없는 불법과 범죄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단지 판사니까 판사가 그것을 앞장서서 막고 덮으려 하고 있다.
지루하던 가운데 마지막 몇 분이 정말이지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아 저 썩을 개새끼들이 이렇게 한 방 먹게 되는구나. 결국 배드엔드로 끝나더라도 그래도 이 한 방은 꽤 치명적일 수 있겠다.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통쾌하다. 그 와중에 억울한 피해자여야 할 사형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가족들이 오히려 죄인이 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사랑하는 가족을 죽였다 죄책감에 눈물을 흘려야 했었다. 이제라도 뭔가 아주 조금이라도 드라마에서나마 바뀔 수 있다면.
여전히 어머니는 무책임하다. 집안 어른들끼리 정한 일이다. 당사자의 일이다. 자식들 자신들의 문제다. 그것을 한수호나 한강호나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혀 생각도 안했던 것일까. 사실대로 말하고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그로 인해 자식들이 받았을 상처에 대해서 무심히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한강호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여기게 된 계기다. 어쩌면 한수호와 한강호 형제의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하는 한강호였기에 한강호의 한 마디에 여자친구의 질책 만큼이나 한수호는 고민하게 된다. 그는 과연 이제부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언론이나,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나, 아니 변호사에게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어차피 돈벌자고 하는 직업이다. 더 많은 돈을 주는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변호사 본연의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변호사라면 상당히 부도덕한 직업 가운데 하나로 여기기도 한다. 대부분 변호사라면 거짓말장이아 협잡꾼이라 여기는 것도 그런 영향일 것이다.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워낙에 용서받을 수 없는 흉악한 범죄자라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변호사로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판사는 어떤가. 검사는 어떤가. 언론은 그냥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일 뿐이니 그리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한강호 만큼이나 고발이 적나라하다. 유치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역시 한강호 때문이다. 이 양아치가 쌈마이하게 부대끼거나 거리껴지지 않게 그런 고발들을 드라마로 녹여낸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시청자의 감정에 맞춰 드라마를 통해 드러낸다. 재미있다. 그보다 통쾌하다. 한 주 가장 통쾌한 시간이었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