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 - 갈수록 커지는 지루함, 갈등의 끝이 다가오다

까칠부 2018. 9. 14. 11:19

그러니까 내가 처음 이 드라마에 기대했던 것이 아예 한수호가 납치되어 행방불명되고 한강호가 한수호가 되어 재판을 하는 역할바꾸기였었다. 결국 한수호가 납치에서 풀려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한참 나중 일이고 그때까지 한강호가 양아치 출신으로 기존의 판사들과 다른 판결을 내리며 좌충우돌하는 내용이 주가 될 것이다. 아마 케이블이었으면 그런 식의 전개도 충분히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한수호와 한강호 형제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드라마가 무지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굳이 남의 가정사까지 알고 싶은 생각따위 없는 사람에게 오만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데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다. 그나마 한강호를 한수호라고 철석같이 믿고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송소은의 존재는 상당히 독특한 긴장과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한강호가 자기가 한강호라고 밝히고 싶은 이유이며 밝힐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과거 한수호가 송소은이 그토록 찾고 있는 언니의 재판에서 증언한 사실까지 더해지면 진실이 밝혀진 이후가 더 궁금해진다. 마침내 오상철을 통해 그 진실이 송소은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마저 한강호와 송소은이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흔한 로맨스드라마로 전락하고 만다.


법정드라마인 양 분위기를 잡고서 정작 한강호가 한수호의 이름으로 진행한 재판은 몇 되지 않는다. 그나마 초반에 거의 몰려 있고 중반 이후부터는 오성그룹 후계자와 관련한 재판 이외에는 한강호와 송소은 주변의 이야기가 상당한 분량을 거의 채우고 있다. 형제가 서로 다투고 갈등하고 그 갈등에 어머니며 주변의 여자들까지 휘말리고, 그런 가운데 한강호와 대립하고 있는 대기업과 로펌과 검찰의 - 그보다는 아버지를 노리는 아들 오상철의 이야기가 나머지를 거의 차지하다시피 한다. 그나마 전주 마지막에 재판의 내용을 뒤집으며 카타르시스라도 주었지만 이번주는 그마저도 없다. 마지막을 앞두고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것일 테지만 역시나 재판과 상관없이 주변인과의 이야기들만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표까지 냈으니 이제 더이상 한강호가 한수호의 이름으로 재판을 진행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흥미롭다면 끝내 송소은으로부터 거절당하고 짓던 오상철의 표정이었을 것이다. 마치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아이의 표정이었을까? 그동안 믿고 있던 진실을 부정당한 아이의 상처입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오상철의 어머니가 궁금해진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세금관련 변호를 맡기겠다 했을 때 반발하며 짓던 표정도 비슷했었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아버지를 배신한다. 아버지에게 배운 방법으로, 아버지가 해왔던 방식으로, 그렇게 아버지를 밟고 올라서서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과연 어린 시절 오상철의 부모들은 어떻게 오상철을 기르고 가르쳤던 것인가. 그저 일방적인 보호와 주입을 애정이라 착각하고 오상철을 내몰았던 것은 아닐까. 오상철이 송소은에게 그토록 집착했던 것도 어쩌면 모성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예정된 길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을까.


오상철의 이야기도 더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한수호와 한강호 형제에 송소은의 이야기까지 너무 많다는 느낌이라. 어찌되었든 주인공이 판사가 되어 있고 재판도 진행하는데 법정과 관련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를 통한 카타르시스 역시 기대한 만큼이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고, 갈등하고, 오해하고, 다투고, 그 위에 구색맞추듯 사회정의를 끼얹으려 한다. 새로울 것도 없는 재벌가의 범죄가 법조계의 어두운 그늘과 어우러져 주인공의 반대편에 선다. 하지만 직접 부딪히는 일도 그리 없으니 그렇게 쪼이는 맛은 없다. 그들은 그들대로. 이쪽은 이쪽대로. 그리고 이제 조금 있으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과연 마지막회를 볼 것인가. 한 번 흥미를 잃으면 고작 한 회를 남겨둔 상태에서도 더 보기를 거부할 때가 많다. 내 시간이 아깝다. 그래도 볼 만한 가치는 있을까. 그나마 기대하는 마지막이 있다. 하지만 공중파에 어울리는 전개는 아니다. 그래도 권선징악은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판사라는 것부터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가장 썩은 인간들이 바로 판사들이다. 새삼 요즘 깨닫는다. 판사가 재판한다는 자체가 코미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