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과 설사, 그리고 저탄고지
오래전 난생 처음 고기를 먹고 설사를 시원하게 한 뒤 채식주의자가 되어 버리는 판타지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신선했다. 아마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고기를 먹으면 설사를 하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으니. 그만큼 예전에는 기름진 것을 먹기가 아주 어려웠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름진 것을 먹으면 바로 화장실에서 표시가 난다. 튀긴 안주에 맥주를 먹으면 설사를 하는 이유를 그동안 전혀 엉뚱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여전히 지방을 소화하고 흡수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먹는 양에 비해 살이 찌지 않는 이유다. 최고의 변비약은 견과류다.
어떤 사람들은 주장한다. 원래 사람의 몸은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도록 되어 있었다. 지방위주의 식사야 말로 인간의 몸을 원래의 자연상태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한동안 지방을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의 몸은 지방을 거부하게 되는 것일까? 단백질과 탄수화물은 다르다. 저탄고지의 어려운 점이다. 아무리 오래 탄수화물을 줄였어도 조금만 양을 늘이면 바로 반응하여 탄수화물 대사를 시작한다. 어째서?
간단한 것인데 원래 자연상태에서 지방이란 매우 귀한 식재료라는 것이다. 식물성기름을 요리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지 않다. 올리브기름이나 들기름, 참기름 등은 드레싱 용이니 요리용이 아니었다. 요리에 흔히 쓰이는 정제된 식물성 식용유란 화학공법이 발달한 근대 이후에나 나타난 것들이다. 지금도 대부분 식물성기름들은 용매를 사용해서 화학적으로 정제되어 생산된다. 그러면 이전에는 어떤 기름을 사용했을까? 바로 동물의 지방과 아니면 유지방인 버터다. 문제는 동물의 체지방비율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란 점이다.
그래서 근대 이전에는 기름을 많이 쓰는 튀김이란 자체가 매우 사치스런 요리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기름을 듬뿍 두르고 볶는 자체도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동물성 기름을 얻기 위해서 잘 먹지도 않는 돼지를 기르고, 먼 바다로 나가서 피하지방을 축적하고 있는 고래나 물범 등 해양포유류를 포획하고, 그러니까 도대체 언제 인간이 지방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굳이 곡물농사를 짓지 않았어도 원래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가장 흔하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곤충이나 동물의 사체에서 얻을 수 있는 단백질과 각종 열매나 식물의 뿌리 등에서 얻게 되는 탄수화물이었다. 지방은 구하기도 힘들고 따라서 굳이 지방을 소화하는 능력을 발달시킬 필요도 없었다. 아마 저탄고지가 다이어트네 효과를 보이는 것도 지방의 효율이 다른 영양소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이유도 한 몫 하고 있을 것이다. 소화도 흡수도 사용도 상당히 비효율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심지어 체내에 축적된 지방을 사용할 때는 근육에 있는 단백질까지 분해해 사용해야 하는 경우마저 있다.
살찌우는 것은 쉬워도 살빼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굶어서 살을 빼려면 지방과 함께 단백질까지 함께 분해되어 쓰이게 된다. 지방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방보다 더 많은 단백질이, 즉 근육량이 줄어드는 경우마저 있다. 그래서 운동을 할 때는 근육의 손실을 막기 위해 에너지원으로 탄수화물을 함께 섭취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굳이 지방을 주에너지원으로 써야 한다. 과연 정상일까?
하기는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한 마디로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 탄수화물은 너무 소화흡수가 수월하기에 지방으로 축적되는 비율도 높다. 하지만 지방은 소화흡수에마저 탄수화물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체내에 축적하기도 무척 어렵다. 이렇게까지 해가며 살을 빼야만 하는 것일까. 그만큼 먹는 양이 늘었고 그 늘어난 양을 유지하면서 살을 빼야만 한다.
비슷한 원리다. 지방의 소화흡수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먹는 양에 비해 몸무게는 크게 늘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살찌는 대부분 원인은 따라서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을 많이 먹으면 살은 찌지 않는다. 원래 몸이 그렇게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드는 생각이다. 내 몸도 참 비효율적이구나. 그런데 기름진 것들이 너무 많은 지금은 효과적이다.
말하자면 순리가 아닌 역리인 때문이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서가 아닌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기에 일부러 비효율을 쫓는 것이다. 그래서 그다지 건강한 다이어트법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굳이 저탄고지를 사용하지 않고도 먹는 양을 줄이고 활동량을 늘이면 살은 자연스럽게 빠진다. 쉽고 편한 것은 없다.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