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Queen - Killer Queen

까칠부 2018. 11. 7. 06:20





사실 프레디 머큐리는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성의 고음보컬이었다. 목소리도 굉장히 섬세하게 냈고 그래서 80년대와 목소리가 상당히 다르다. 하긴 그러고보면 록보컬 가운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되랴만. 원래 록보컬처럼 전성기가 짧은 직업도 드문 편이라서.


흔히 프레디 머큐리와 비견되는 또 한 사람의 전설적인 록보컬 로버트 플랜트 역시 진짜 목소리의 전성기는 초반 4년 정도라 일컬어질 정도였었다. 원래 록이란 장르 자체가 성대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음역대를 기본으로 사용하던 장르이기도 하고, 워낙 뛰어난 보컬들이라 그런 고음역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하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했었다. 더구나 로커 특유의 자유분방한 사생활까지 더해지면서 젊고 힘차던 목소리는 점차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사람들이 프레디 머큐리라 하면 유리성대를 떠올리는 이유일 것이다. 레코딩과는 다르게 라이브에서 음역이 불안정하고 고음에 버거워했으며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관객에 마이크를 넘기는 등 여러가지로 아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프레디 머큐리가 라이브에서 불러야 했던 노래들을 떠올리면 생각이 달라진다. 퀸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던 이유와 이어진다. 너무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했었다. 하나의 스타일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매번 앨범마다 새로운 장르와 스타일을 시도하며 변화를 주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자신의 성대를 악기로 사용하는 보컬에게 있어 매번 앨범을 낼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는 뜻이다. 그런 서로 다른 스타일의 노래들을 하나의 무대에서 모두 소화해낸다. 성대도 근육이다. 과연 성대가 얼마나 버텨내겠는가.


그래서 역시나 라이브에서 한계를 확인하고 프레디 머큐리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프레디 머큐리의 스타일은 그렇게 완성된 80년대 이후의 스타일이다. 레코딩에서는 완벽하게 구현했으나 라이브에서는 한계를 보이던 보컬을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며 80년대 이후 오히려 음역과 음색이 퇴색한 가운데 보컬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 계기가 바로 유명한 라이브 에이드다. 물론 이후로도 라이브에서 불안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지만 이때의 표현력은 그가 로버트 플랜트를 누르고 역사상 최고의 록보컬로 손꼽힌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득음을 했다 해야 할까?


그냥 자기가 잘하는 방식으로 자기가 잘내는 소리만 들려주면 충분했을 것이다. 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괜히 라이브에서 힘들지 않도록. 하지만 사람이 그게 되나. 아니 하나의 장르만 스타일만 죽어라 팠어도 결국에 그 안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것이 아티스트란 인종들인 것이다. 70년대 록보컬들은 그런 도전정신에 충만한 인간들이 많았고, 더구나 밴드들마다 서로 미묘한 신경전까지 더해지면서 무모한 시도들도 더해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마약에, 술에, 담배에, 그러고보면 프레디 머큐리도 담배로 인해 목소리가 많이 상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자기관리와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함이 예술인으로서의 엄밀함에 해를 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예술인으로서보다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그들은 대중이 원하는 소리를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퀸도 역시 어느 시점에 이르면 비틀스나 레드제플린이 그랬던 것처럼 라이브 이상의 음악을 들려 줄 수 있는 레코딩의 완성도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라이브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레코딩에는 한계가 없다. 덕분에 퀸은 다시 평론가들에게 비판을 듣게 된다. 라이브도 하지 못할 음반을 녹음실에서만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건 다른 밴드들도 마찬가지라. 오죽하면 영화제목이기도 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오페라 파트를 라이브에서 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음원만 틀어놓고 멤버들은 무대에서 나가는 퍼포먼스까지 보였을까. 그 이상의 집착, 그 이상의 집요함, 그래서 병에 걸렸어도 그는 마지막까지 음악을 놓지 못한 것이리라.


진짜 다양한 음악들을 소화했다. 그리고 음악마다 스타일이 다른 다채로운 보컬을 선보이고 있었다. 하나의 노래 안에서도 다양한 음색과 스타일을 보여주었었다. 퀸의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부르면 그 맛이 안난다 여기는 이유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노래하는 보컬은 더이상 없다. 하긴 당시도 프레디 머큐리 뿐이었다. 거기에 무대매너까지 신내린 사람 같았으니. 이런 사람들이 전근대사회에서는 무당이 되고 예언자가 되고 했던 것일까.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면서 느낀 것이다. 진짜 신내렸다.


영화 덕분에 요즘 퀸의 음악을 계속 들으며 지내고 있다. 어떤 것은 아는 것들이고, 어떤 것은 오랜만에 듣는 것들이며,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처음 듣는 것도 있다. 그리고 새삼 깨닫는다. 프레디 머큐리는 단 한 명이다. 전에도 뒤에도 이 한 사람 뿐이었다. 전설처럼 노래는 이어진다. 신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