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 - KIS vs NIS, 이상한 나라의 고애린

까칠부 2018. 11. 8. 10:45

바로 이런 장면들인 것이다. 바로 이런 장면들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똑같이 코너스톤의 한국지부장이기도 한 대통령 비서실장 윤춘상의 집으로 잠입하는 준비를 하는데 KIS와 NIS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 고애린을 중심으로 킹캐슬의 주민들과 김본을 중심으로 킹스백의 멤버들이 각각 주목하고 대비하는 부분들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 또 그것이 무척 어울린다.


공주님은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로 따라들어간 앨리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누가 다가와 도와주기만 기다리지 않는다. 모든 진실을 알았다. 어떻게 자기 남편이 죽었고, 그 배후에는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으며, 김본이 그동안 어떻게 자기와 아이들을 지켜주고 있었는지. 서러워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고마워서 울고 어쩔 수 없어서 울고 그렇게 마음껏 울고 난 뒤 고애린이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자신도 함께 싸우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한 어떻게든 해야겠다. 자기가 나서서 해야만 하겠다. 회피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하긴 그래서 드라마의 주인공일 수 있는 것이다.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과장과 그러면서도 스릴러다운 긴장감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역시나 코어스톤 지부장의 모든 기밀이 숨겨진 집안의 살림을 책임지는 인물답게 집사 안다정의 전력 가운데 스페츠나츠 출신일지 모른다는 설정이 더해진다. 가사도우미로서의 요리실력과 스페츠나츠일지 모르는 칼솜씨가 그 순간 KIS와 NIS만큼이나 절묘한 조화와 대비를 이룬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안다정이 지키는 집안으로, 내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로 침투하여 기밀들을 빼낼 것인가. 그래서 김본이 어떻게 스페츠나츠 출신일지 모르는 안다정을 상대할 것인가 고민할 때 KIS는 나박김치라는 고애린의 장기를 답으로 내놓는다. 대통령 비서실장 윤춘상이 나박김치를 좋아하기에 나박김치를 잘 만드는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그 답은 정답이었다. 마찬가지로 단순화되고 희화화된 면접을 거치며 고애린은 나박김치로 마침내 채용승락을 받아낸다.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 바로 그 순간 윤춘상에게 국정원으로부터 고애린에 대한 정보까지 포함된 테리우스의 죽음과 관련한 자료들이 보고된다. 윤춘상이 집으로 전화하고 고애린을 흘겨보는 안다정이 수상쩍다. 그런데 설마 윤춘상 정도 되는 사람이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는데 일일이 지원자의 신상까지 미리 알고 기억해두기까지 했었겠는가. 워낙 함정이 많은 드라마라 이 또한 낚시가 아닐까 기대해 본다. 진용태가 윤춘상에게 제공하기로 한 테리우스의 스위스 비밀계좌 또한 김본이 사전에 미리 진용태에게 지시해 둔 내용이었었다. 진용태가 보험으로 가지고 있던 동영상까지 윤춘상의 손에 들어가고 목숨을 위협받던 순간 그것을 이용해 상황을 모면한다. 한 바탕 킬러 케이와 활극을 벌일 것을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 오히려 액션의 통쾌함보다 더 짜릿하다.


전반적으로 참 정교하게 잘 설계된 드라마라는 생각이다. 킹캐슬과 국정원의 대비가 완벽하다. 킹캐슬로 대변되는 밝은 세계와 국정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그늘진 세계의 대비가 절묘하게 조화롭다. 때로 서로 상관없이, 때로 서로 충돌하며, 때로 서로 도와가며, 그렇게 김본과 고애린이 만난다. 서로 다른 세계의 주민으로서 서로의 세계로 넘나들며 그렇게 인연을 쌓아간다. 그 과정에서 국가적인 규모의 음모와 개인의 사정들이 함께 얽히며 재미를 더한다. 아, 이건 재미있다. 아쉬운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드라마라는 것이 마냥 하고싶은대로 다 하며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제작비부터 차원이 다른 미국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아직 미심쩍은 부분들이 적지 않다. 확실하지 않지만 확신을 가지고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주민이 된 고애린은 또다른 던전으로 모험을 떠난다. 취직은 걱정없을 것 같다. 아마도 마지막은 국정원에 특채된 아줌마 고애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 어느 미국드라마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 상상들도 해 보게 된다. 진짜 쓸데없이 유능하다. 이 아줌마는. 예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