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장미여관 해체를 보면서...

까칠부 2018. 11. 12. 22:49

사람 관계란 것이 딱 1/n씩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애당초 갈등이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1/n로 이루어진 관계라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원근법이란 자체가 내게 더 가까울수록 더 크게 느껴지는 인간의 인지를 일컫는 것이다. 자기에게 가까울수록 실제보다 더 크게, 자기에게서 멀수록 실제보다 더 작게,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돌아갈 몫도 내게 더 크게, 상대에게는 더 작게. 그래서 사람 관계란 것이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 밴드가 깨져나가는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돈문제가 거의 절대적이다. 버는 돈의 단위가 다르기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을 수 있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밴드음악이란 자체가 상당히 소외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환경에는 그냥 돈 몇 푼이 아닐 수 있다. 알량한 수입 가운데서 생활도 해야 하고, 가정도 꾸려야 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간 얼마의 수입이 자꾸 눈에 밟히고. 무엇보다 당장 다른 돈벌이를 찾아 나서야만 한다. 하다못해 밴드 때려치고 어디 가서 세션을 해도 이것보다는 더 받을 수 있다. 그냥 세션비로만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겨진다면 다툼이 생길 이유가 어디 있을까.


김윤아의 독보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자우림이 지금껏 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김윤아가 자우림을 바라니까. 자우림의 일원이기를 바라니까. 스스로 밴드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고 그를 위해서 다른 이익을 다소간 희생할 수 있다. 자신의 지분을 얼마간 양보할 수 있다. 서로 공존하는 법을 깨닫는다. 서로 타협할 수 있는 한계를 서로 합의한다. 그럼에도 역시 어쩔 수 없이 들게 되는 본전생각을 그 과정에서 잠시 뒤로 물리기도 한다. 음악적인 견해같은 고차원적인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 깨져나가는 팀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도저히 본전생각을 접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은 누가 더 간절히 팀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자기는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 그 선을 서로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가. 안되면 깨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에게 아직도 팀을 유지할 의지와 당위가 남아 있는가. 무슨 이야기들이 그동안 그 사이에서 오갔는가 알 수 없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다. 더이상 함께 팀을 유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탑밴드' 출연 당시 워낙 인상적으로 보았던 터라. 무한도전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은 육중완과 강준우 두 사람 뿐이었다. 팀을 알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지나치게 두 사람에게 중심이 쏠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멤버들도 분발해서 팀 안에서 자기 몫을, 자기의 역할을 더 찾아서 노력했어야 했을 테지만. 균형을 잃은 인간관계가 오래가는 것을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거기까지라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 테지.


그러고보니 장미여관의 음악을 들어 본 지도 꽤 되었다. 요즘 정신이 없어서 음악을 거의 듣지 못한다. 특히 최근 노래들은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귀보다는 기억으로 듣는다. 오래전 각인된 감정으로 추억속의 음악들만을 듣는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그래서 의미없다 여겨진다. 그동안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하지만 좋아하던 밴드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아침에 깨져나가는 것을 수도 없이 보며 나름대로 상처도 받아왔던 터라. 또 하나의 밴드가 이렇게 사라진다. 괜한 감상이다. 어울리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