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뮤지션과 라이브
너무 유명하지만 사실 이 노래도 라이브가 안되는 스튜디오 음악 가운데 하나였다. 중반에 오페라파트가 멤버들의 목소리를 수십수백번 겹쳐 녹음한 것으로 라이브로는 도저히 그 비슷하게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공연에서는 그냥 음원만 틀어놓고 멤버들은 뒤로 물러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70년대부터 특히 전자산업이 발전하면서 녹음기술까지 비약적으로 함께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불가능하던 것들이 하나씩 가능해지고 있었다. 라이브에서는 불가능한 다양한 시도들이 보다 발전한 기술의 힘을 빌어 녹음실에서 실제 구현되고 있었다. 한 편에서는 라이브의 끝을 보여주던 레드제플린이 있었지만 한 편에서는 그런 기술적 진보에 힘입어 현실에서 불가능한 다양한 시도들을 녹음실에서 구현해보고자 하는 새로운 음악인들도 나타나게 되었다. 새롭다고 하지만 벌써 6,70년대의 일이다. 그 대표가 바로 비틀스. 비틀스의 쇠퇴 역시 라이브에서는 불가능한 다양한 시도들이 정작 콘서트에서 자기들이 음반으로 내놓은 음악조차 소화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 한 원인이었다. 퀸이 활동하는 내내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들어야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라이브로 공연하지도 못할 음악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같은 진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녹음실에서만 가능한 극한의 표현을 추구하는 스튜디오 음악인이란 이처럼 해외에서는 역사도 깊고 그 수도 상당한 편이었다. 그래서 라이브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다르다. 라이브를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겠지만 할 수 없으면 립싱크라도 상관없다. 아예 핸드싱크도 아니고 퀸처럼 그냥 음원만 틀어놓고 멤버가 사라지는 퍼포먼스도 가능하다. 음반과 라이브는 별개다. 물론 모든 대중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합의점은 서로간에 만들어져 있다. 라이브가 아니더라도 콘서트는 가능하다. 라이브만이 공연의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 반면 아직까지 한국의 대중들의 경우 가수들에게 라이브를 거의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과격한 춤을 추면서도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 노래에는 조금의 기계적인 조작도 가해져서는 안된다. 순수한 사람의 목소리만이 진짜다. 지금도 그런가는 모르겠는데 아직 한국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던 몇 년 전까지 - 그러고보니 이 블로그도 아주 오래되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다. - 뭐만 하면 터져나오는 것이 가수들의 라이브와 관련한 논란이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아직까지 한국대중들은 기술을 거부하고 가수의 순수한 목소리에만 집착하는 것일까?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선진국에서와 기술적으로 대등한 수준으로 스튜디오 녹음이 가능해진 것이 그리 오래지 않다는 것이다. 겨우 사람 목소리 하나 깔끔하게 녹음하지 못하던 것이 불과 한세대도 지나지 않은 시절의 기술수준이었다. 녹음실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발달한 기술을 사용해서 녹음실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들려준다는 자체가 대중에게도 음악인에게도 너무나 낯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음악인의 노력과 성의를 판단하는 기준은 한 가지일 수밖에 없다. 얼마나 녹음과 라이브 사이에 차이가 적은가. 얼마나 라이브처럼 녹음하고 녹음한 것처럼 라이브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관성처럼 이어지고 있다.
물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덕분에 한국 아이돌들은 과격한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라이브도 하는 기적같은 일을 보여주고 있다. 도저히 라이브가 불가능할 것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도 라이브까지 깔끔하게 소화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워낙 그러기를 강요해 왔으니까. 그래서 연습생 아니면 안된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받지 않으면 안된다. 덕분에 전처럼 규격을 벗어난 다양한 개성들이 나타나기가 어려워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다. 같은 기획사에서 훈련받으면, 아니 서로 기획사가 달라도 체계가 비슷하면 창법까지 어느새 비슷해진다. 정작 목소리만 듣고서는 가수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갈수록 많아진다.
고음을 내고 싶은데 자기 음역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면 기계의 힘을 비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스이펙터도 발명되었다. 자기 노래실력이 미치지 못하면 끊어서 녹음하는 것도 가능하다. 박완규가 그렇게 성대가 아예 너덜너덜해진 시절 김태원의 지휘 아래 끊어서 녹음한 끝에 '비밀'을 내놓고 있었다. 처음 듣고 연결이 어색한 부분이 있다고 썼던 적이 있는데 내 귀가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구나 새삼 자뻑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기술이 발달했으니까. 그런 만큼 발달한 기술을 이용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을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인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한국 대중음악이 평준화된 이유도 이 또한 한 몫 하고 있을지도.
그냥 퀸의 음악을 반복해 듣다가 생각났다. 영화 때문에 요즘 퀸 음악을 열심히 찾아듣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역시 내게는 레드제플린이 더 취향이다. 레드제플린에 대해서도 한 번 써보고 싶다. 어차피 다들 아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테지만. 음악은 라이브가 전부가 아니다. 그리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