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 푸른 해 - 점입가경,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다
분명 새엄마 허진옥은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차우경이 찾고 있는 여자아이가 누구인지. 어째서 차우경이 여자아이를 보고 또 지금처럼 집착하며 찾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래서 애써 강하게 부정하며 말린다. 찾지 마라. 떠올리지 마라. 아닐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사고로 죽은 아이의 엄마를 차로 친 것은 전혀 엉뚱한 다른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살인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녹색 원피스의 여자아이가 사실은 차우경 자신이었다는 어릴 적 친구의 증언 역시 착각으로 다시 정정되었다. 다만 어린 시절 차우경이 똑같은 녹색 원피스를 입기는 했었다. 그렇다면 여전히 자신의 앞에 보이고 있는 여자아이는 누구란 것일까?
자기와 상관없다더니 대포폰 명의를 도용당했다는 민아정이 정작 붉은 울음과 컴퓨터로 채팅을 하고 있었다. 민아정이 붉은 울음을 안다. 어떻게? 언제부터? 어디까지? 차우경만 아는 비밀을 붉은 울음이 알고 있는 것도 상담한 내용을 저장한 서버를 통해 알아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원장만이 서버에 접근하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지만 주변에서 대신 관리하느라 권한이 분산되어 있다. 어쩌면 그 가운데 누군가 서버에서 차우경의 상담기록을 보고 범죄를 계획했을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또 누구인가?
하지만 한 편으로 답답한 현실도 그려진다. 뻔히 자기 아내가 낳은 딸을 철저히 부정하고 출생신고도 않은 채 방치했던 부모다. 그러나 그럼에도 단지 유전적으로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 한다. 엄마가 버린 아들과 딸인데 시설에서 보호하려 해도 버린 엄마의 동의가 필요하다. 문득 아빠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한 딸을 보호자라는 이유로 다시 성폭행한 아빠에게 돌려보낸 판결을 떠올리게 한다. 부모를 잃고 친족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했는데 부양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친족들을 선처하고 피해자를 다시 가해자들에게 돌려보냈다. 그 아버지라는 인간이 자신있게 내뱉는 '천륜'이라는 말이 그래서 무척이나 역겹게 느껴진다. 그것이 진정 천륜이라면 태어난 순간 이미 그는 아버지로서 자신의 도리를 다했어야 했다.
아이는 부모의 부속물이 아니다. 아이 또한 독립된 인격으로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오로지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위한 최선을 다른 관계를 배제한 채 오로지 공적인 관계에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도 그 하나다. 아니면 담당부처의 공무원일수도 있다. 더이상 핏줄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딸을 맡겨서는 안된다. 단지 생물학적인 부모이고 유전적인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격없는 이들에게 아이를 돌려보내서는 안된다. 천륜이라는 부모의 판단과 결정이 아닌 오로지 개인으로서 아이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 과연 이대로 단지 생물학적인 아버지라는 이유로 하나가 아빠에게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진심으로 딸을 사랑해서 돌려받으려는 것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사랑해도 그 사랑이 온전한 사랑일지 믿기 어렵다.
그렇게 비극이 만들어진다. 그 희생자는 대개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이다. 스스로 보호할 힘이 부족한 아이들일 것이다. 누가 그렇게 만드는가.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다면 그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것은 어른이 아닌 이 사회 그 자체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른이 할 일이다. 원래 오래전에도 아이들은 마을 단위로 공동체가 보살피고 길러왔었다. 국가는 안되는 것일까?
그런 고민이다. 아무도 돕지 못하면 누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가? 누구도 지켜주지 못한다면 누가 그들을 지켜주어야 하는가. 차라리 폭력으로. 차라리 범죄로. 차라리 누군가를 죽여서라도. 그러니까 그 역할을 누가 하고 있다는 것인가. 또 함정에 빠져들까 함부로 확신을 못하겠다. 아무튼 경이적이다. 헤어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