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떠나는 유진우와 쫓아가는 정희주

까칠부 2018. 12. 17. 09:56

의심하면서 아니라 한다. 유진우가 미안하다 말하는 것을 들었다. 차형석의 옷에 유진우의 지문이 묻어 있고, 차형석이 죽은 시간이 유진우와 만난 전후였다. 박선호 역시 최양주로부터 유진우가 차형석을 밟아 놨더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남은 유진우를 위해 그런 의혹들은 묻기로 한다. 오히려 의심하기 때문에 사인을 알 수 없는 차형석의 부검까지 거부한다. 


어쩌면 인간관계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 사랑한다고 믿고 우정이라 믿는다. 그래서 부부라 친구라 여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친구는 배신자가 되어 있고 부부는 이혼하고 남남이 되어 있다. 자기가 우정이라 여겼던 것이 과연 우정이었을까? 자기가 사랑이라 여겼던 것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왜 결혼했는지 모르는 여자와 부부가 되어 이제는 이혼을 다투는 사이가 되었다. 과연 아직 법적으로 부부인 고유라와의 관계를 보고 누가 그들이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일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부모가 결혼을 강제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어째서 결혼같은 걸 한 것일까?


대충의 메커니즘을 추리해 볼 수 있다. 게임시스템이 뇌에 너무 강한 자극을 줌으로써 마치 잔상처럼 구조의 변화가 일어난다. 게임에 접속한 것이 아니라 유진우의 말처럼 뇌의 오류로 환각을 본 것이다.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게임이라면 일단 서버에 접속해야 실행이 될 텐데 뇌와 신경만으로 물리적 서버와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드라마에서도 나온 바 없다. 더구나 유진우를 쫓는 NPC가 차형석 하나라는 사실도 걸린다. 게임의 버그같은 것이다. 이 경우는 게임의 서버가 아닌 유진우의 뇌라는 클라이언트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 연동되어 있으므로 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게임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물론 작가가 그러겠다면 인간의 뇌와 신경만으로 물리적 서버에 접속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할 터다.


과연 내가 보는 것이 실제인가. 지금 내가 보는 것이 실재하는 대상인가. 죽은 것을 안다. 이미 죽은 사람인 것을 안다. 하지만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자기를 향해 칼까지 휘두르고 있다. 휘두른 칼에 맞을 때마다 죽을 것 같은 고통과 공포를 느낀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고통과 공포 만큼은 실제다. 아무말 없이 그저 표정없는 얼굴로 자신을 죽이려 쫓아오는 옛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현실의 존재처럼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단지 환각이다. 단지 착각이다. 그 결론을 내리기까지가 꽤 오래 걸렸다. 오래 자고, 오래 잊고,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기까지. 그러니까 누가 자기를 사랑하든 그것은 무슨 상관인가.


문득 만화 '타짜'의 대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사랑도 구라다. 사랑은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상대를 들었다 놓았다 속이고 자기 자신도 속이거든. 사랑하는 것인가. 사랑한다 믿는 것인가.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사랑하지 않는다 여기는 것인가. 다시 한 번 차형석을 게임속에서 죽이고 유진우는 조금씩 안정을 찾는다. 극복할 수 있는 대상임을 알게 된다. 옛친구도, 친구의 유령도 아닌 그저 게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임의 시스템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고 막을 수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이제는 그라나다를 떠나려 한다. 정희주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바르셀로나행 열차에 오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로맨스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대로 게임만 하다가 끝내기에는 박신혜가 너무 아깝다. 매력적인 남녀는 그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사랑을 해야 한다. 마치 자아도취에 빠진 시청자 자신처럼 매력적인 남녀이기에 그들은 모두가 감탄할만한 사랑에 빠져야 한다. 유진우가 붙잡고 정희주는 떠나지 못한다. 유진우가 떠나고 정희주가 그 뒤를 쫓는다. 그리고 다음은? 아직 풀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진짜 미스테리는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사람의 관계 속에 있다. 진짜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게 아닐까.


단순히 재미를 위해 선택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증강현실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함의가 상당하다. 현실과 허구를 오간다. 실제와 착각 사이를 오간다.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단지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인간 관계도 그와 같다. 유진우를 둘러싼 관계가 그래서 게임속 허구들과 상당부분 대비된다. 그는 게임속에 있는 것인가?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인가? 게임이 현실인가? 현실이 게임인가? 너무 식상한 물음이기는 하지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