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서비서의 죽음, 그리고 빛

까칠부 2018. 12. 31. 06:46

결국 서비서도 죽고 말았다. 망상이 현실이 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비웃던 것이 잔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만일 사실이라면 제이원은 도산이다. 과연 개발자인 정세주는, 그러니까 정세주를 찾아나선 대표 유진우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돌아올 것인가. 제이원에서는 지금 차병준을 중심으로 유진우를 몰아내려는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는 중이다.


믿고 싶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런 게 설마 가능하겠는가.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겠는가. 믿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아니면 회사가 망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는데 회사가 망하고 만다. 그보다 차라리 유진우가 미친 것이 낫다. 유진우가 미쳐서 헛소리를 하는 것이 훨씬 모두를 위해 좋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서도 좋다. 그렇다면 유진우를 희생시키는 것이 회사를 위해서도 최선이다. 그런데 그렇게 유진우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던 박선호에게 정희주를 건너 서비서의 죽음이 전해진다. 진짜였다. 갈등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진실인가? 아니면 믿음인가?


차병준은 자신의 믿음을 우선하는 타입이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해서 타인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유진우를 믿은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유진우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이수진의 말처럼 오로지 자신의 믿음을 위한 것이었다. 회사를 위한다는 믿음.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 그래서 이수진에 대한 태도도 바뀌지 않는다. 자신의 핏줄인 손주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사실보다 자신의 믿음이 중요하다. 어떤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그 믿음 하나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유진우와 차병준 사이에 중간자로서 박선호가 있다. 그는 객관적이면서 또한 주관적이다. 


과연 고유라가 차병준에게 전한 또다른 진실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자신있게 확신에 찾 표정을 짓게 만드는가. 그러는 사이 유진우는 서비서마저 잃고 홀로 알함브라 궁전의 지하감옥으로 걸어들어간다. 기껏 회사에서 챙겨간 최팀장이 개발해 놓은 아이템들은 소용없어졌다. 오로지 최초 게임 그라나다에서 주어졌던 아이템만으로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자칫 죽을 수도 있다. 차형석이나 서비서가 그랬던 것처럼 게임에서 목숨을 잃으면 실제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퀘스트다. 과연 최상위 난이도의 던전 답게, 무엇보다 지하동굴답게 어둠속에 나타나는 좀비들의 모습이 섬뜩하기조차 하다. 원초적이고 직관적이며 통념을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마의 미덕이다. 소재가 참신한 만큼 무리한 시도로 시청자와 거리를 벌리거나 하지 않는다. 과연 유진우가 마지막에 본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결투상대였던 차형석이 시도때도 없이 결투를 위해 찾아오는 것처럼 서로 돕는 동맹관계였던 서비서도 유진우가 위험할 때 그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고 게임시스템에 의해서 마지막까지 오로지 눈앞의 적들만을 상대하는 서비서의 존재는 차형석 만큼이나 섬뜩하면서 든든하다. 비로소 유진우도 서비서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자책할 새도 없이 그럼에도 유진우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죽을 걸 알면서도. 죽을 지 모른다는 절망과 체념마저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지금 이 길이 자신이 선택한 자신이 가야만 하는 길이다.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정희주도 이제는 안다. 자신의 동생이 어떤 게임을 개발한 것인지. 지금 유진우가 하고 있는 게임이 어떤 것인지. 단순한 게임퀘스트라 여겼던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것인지도. 정희주가 바로 급하게 찾아든 팸플릿과 유진우가 마지막에 본 빛과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리고 유진우는 그럼에도 마지막에 정세주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분량이 조금 남았을까? 정세주는 그야말로 마지막에 진실의 열쇠를 쥔 선지자로서 유진우 앞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실의 위기가 다가온다. 그러고보면 게임과 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현실의 모든 것들이 게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게임도 있다. 지하던전에서 좀비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덮쳐 오듯 현실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노린 이들이 그를 위해 음모를 꾸민다. 악의를 가진 것은 던전의 몬스터들만이 아니다. 그것을 딛고 이겨내야 한다. 체력이 바닥이더라도. 당장 죽을 것 같아도. 그래서 유진우는 목숨을 걸고 퀘스트를 수행하려 했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지하던전은 차라리 실사라서 예전 2D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원래 던전은 그런 어둡고 음침한 동굴을 뜻하던 것이었다. 저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미로를 뜻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허구가 더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전투는 단순했다. 그만큼 더 치열하고 급박했다. 게임이 드라마가 된다. 어찌보면 격세지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