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 보통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까칠부 2019. 1. 4. 10:20

과연 이것으로 끝일까? 나는 작가를 믿지 않는다. 스릴러를 보면서는 더욱 작가를 의심한다. 재미있을수록 더 그렇다. 몰입해 있을수록 더 그런다. 분명 작가의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작가가 나 몰래 감추고 숨긴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끼다. 나를 현혹시키려는 낚시다. 진짜는 저 뒤 어딘가에 있다.


처음부터 이은호가 범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은호를 범인으로 모는 것이 작가가 파놓은 함정은 아닐까 부쩍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조금씩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못 믿는 것이다. 그렇게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풀었다 조였다 마음대로 가지고 논다. 작가의 의도대로 처음부터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가 다시 아니었다가 이번에는 진짜 범인이 되고 만다. 이것으로 끝일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은호는 차우경 자신도 모르는 차우경의 비밀을 알고 있을까? 그러니까 붉은 울음은 진짜 이은호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마침내 차우경이 마주할 진실은 너무나 참혹할 것 같다. 대충 짐작가는 것이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의 엇갈린 기억이라든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기억을 주입당한 것 같다는 차우경 자신의 회상이나, 새엄마임에도 동생 세경과는 달리 차우경만은 친엄마처럼 따르던 이유와 같은 것들이다. 어릴 적 형성된 관계는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벗어나지지도 않는다. 어린 하나에게 주입된 강한 암시와 어린 은호에게 세뇌처럼 학습된 관계가 그를 완성하는 실마리같은 것이 아닐까. 그것은 차우경 자신의 기억일까? 다른 누군가의 기억일까? 차우경은 진짜 차우경이었던 것일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으니까.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으니까. 고작 부모도 없는 고아따위.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가련한 신세가 그래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온정을 베풀어주었으면 은혜로 여겨야 한다. 원래 인간으로서 누렸어야 할 권리가 아니라 누군가 베푸는 은혜다.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 인간으로 태어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닌 부모로부터 베풀어지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는 것이다.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기까지.


어이가 없다. 그럴 놈이 아니다.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정작 보통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묻자 표정이 바뀐다. 그동안 원장과 큰원장이 이은호를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가. 아니 이 사회가 은혜를 아는 선량한 개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강요하고 있는가. 착하다는 것은 자기 권리마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차면 차이고 밟으면 밟히며 그저 무작정 인내하며 순종하는 것은 전혀 착한 것과 거리가 멀다. 그건 짐승의 삶이다. 가축의 삶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존엄은 그런 부당한 폭력에 대해 저항하고 맞서 싸우려 한다. 존엄이 없는 선과 정의가 과연 개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착각한다. 이 놈은 착하니까 자기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물론 처음에도 이은호는 원장과 큰원장이 생각하는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바보같이 착하고 어리석도록 순하다. 하지만 어느 계기가 있었다. 처음부터 아주 오랫동안 구상하고 실행해 온 일들이 아니다. 어느 시점부터 그는 자신을 되찾게 되었다. 이은호에게 그 말을 해 준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아마도 차우경의 비밀을 알게 된 그 이유로부터. 아닐까?


살인범 붉은 울음을 찾는 수사부분은 일단 끝난 것 같다. 이은호가 붉은 울음으로 밝혀졌고 차우경을 인질로 잡고 대치하다 경찰의 총에 맞고 쓰러졌다. 이것으로 끝인가.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인가. 남은 것은 그저 차우경의 기억에 대한 것인가. 차우경의 비밀에 대한 것 뿐인가. 낚이기 싫은데 이마저 작가에 의해 놀아나는 것은 아닐까.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진짜는 아직 저 뒤에 숨어 있다. 아주 나쁘다. 악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