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그래도 게임보다는 현실, 문득 밀려드는 답답함

까칠부 2019. 1. 14. 05:01

정작 당사자인 유진우가 급한 것 없이 느긋하니 보는 내가 더 조마해진다. 그렇다고 숨막힐 듯한 긴장감까지는 아니고 그저 어쩌려고 저러나 싶은 답답함 같은 것이다. 짜증나서 몇 번이나 채널을 돌려야 했다. 도대체 그토록 급하게 유진우를 쫓던 경찰들은 그새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현실의 일이 다급하게 돌아가니 게임에 대한 관심도 흥미도 그만큼 약해지게 된다. 아무리 게임을 좋아해도 나 역시 현실을 살아가는 일상인인 때문이다. 어차피 게임 서버를 닫으면 더이상 차형석도 나타나지 않고 게임으로 인해 죽거나 할 걱정 역시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보다는 현실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 아닐까? 그렇다고 게임 안의 문제를 해결하면 현실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은 단서같은 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대부분 사람들은 유진우의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들어도 믿지 못한다. 그런데 저러는 것이 유진우의 고집 말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까 게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실의 일을 뒤로 하는 중독자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단지 이유가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게임을 계속 해야 하는 핑계가 필요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 쫓아오는 게임의 치명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거창한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은 인류구원의 사명을 받은 비극의 전사다. 사랑하는 이를 뒤로 하고 누명으로 쫓기면서도 오로지 사명을 위해 퀘스트를 계속 해야만 한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무엇이 이루어지는가? 그에 대한 타당한 설명이 없다면 드라마는 설득력을 잃는다. 과연 유진우가 그렇게까지해야 했던 필연과 당위는 무엇인가?

 

오히려 덕분에 게임하는 장면의 흥미롭기보다 지루하고 짜증이 났다. 왜 이리 한가한가? 어째서 이토록 여유로운가? 어쨌거나 게임은 게임이다. 하긴 처음 게임에 빠지면 현실과 게임의 경계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기는 하다. 자기가 게임에 중독된 사실을 스스로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렇게 억지로 레벨을 올려 필요조건을 갖추고 마지막 퀘스트를 마무리하려 한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그를 잡으려 한다. 한 사람이 절망속에 죽어가는 그 순간에. 우진우가 있는 그 주위만 현실과 동떨어진 별개의 세계같다.

 

정희주와의 감정선이 여전히 이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드라마의 현실과 동떨어진 채 마치 자위하듯 혼자서만 만족하며 진행한다. 그동안 흥미를 자극하던 구성과 연출이 이제는 짜증과 불만의 원인이 된다. 역시 게임은 게임 자체로 충분하다. 게임보다는 현실의 일이 우선이다. 그동안에는 게임을 서비스하게 될 회사의 대표였으니 그러는 것이 상당히 타당한 이유가 되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살인누명이다. 자칫 파렴치한 살인자로 몰려 완전히 매장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체포되어 손이 묶이면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 말했듯 서버를 멈추면 해결될 일이다. 현실의 문제를 더 민감하게 느끼는 내가 잘못된 것일까? 드라마에서도 대부분 등장인물들은 게임과 상관없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튼 마지막 정희주의 동생 민주가 어둠속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놀랐을 때 세주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원래 그런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진우도 현실의 일따위 상관없이 게임에만 매달린 것이었다. 그것 하나는 인정한다. 그래서 정세주여야 했다. 그를 위한 퀘스트였으니까. 그리고 이제 퀘스트를 마친 결과 돌아온 정세주가 사라진 유진우를 찾는 단서가 된다. 정확히 게임의 구성이고 구도다. 유진우가 정세주를 찾고 정세주가 다시 유진우를 현실로 되돌린다.

 

역시 스카이캐슬을 봤어야 했다. 내내 드는 후회였다. 하루에 드라마 하나 이상을 보지 못한다. 시간도 부족하고 몸도 항상 피곤하다. 처음에는 재미도 있고 기대도 컸었는데. 너무 욕심이 컸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여지는 아직 남았을 것이다. 십 수 회 분량의 미니시리즈가 매회 한결같기란 오히려 힘들다. 어떻게 훌륭히 지금까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완성도 있는 마무리를 보여 줄 수 있을 것인가.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그동안 커진 때문이다. 그래도 그동안은 재미있었으니까.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