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불고기 이야기
내가 처음 먹어보고 무척 실망했던 음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불고기였다.
어려서는 소불고기를 먹을 일이 없었다. 불고기란 돼지불고기를 말하는 것이었고, 쇠고기를 굳이 굽는다면 그저 아무 부위나 작게 잘라 석쇠에 그냥 구운 뒤 기름장에 찍어먹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것도 어른들 술안주였고 어린 우리가 먹을 일은 거의 없었다. 소는 국거리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소불고기도 어쩌면 돼지불고기와 같지 않을까. 양념에 재워서 바로 불판에 익혀먹는 방식이 아닐까. 가끔 뉴스에서 불고기를 파는데 국물이 너무 많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 나오면 그게 도대체 뭔 소리인가? 몇 번이나 말했지만 어렸을 적 나는 무척 가난했었다. 소불고기를 처음 먹어 본 게... 어디 보자... 하필 논산 입소하던 날이었구나. 아, 그래서 더 실망이 컸을까?
원래 소불고기는 가운데가 볼록 솟은 전용 구이판에서 요리하는 것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구이판 주위로 국물이 고이는 곳이 움푹 패여 있었다. 사실은 거꾸로다. 오래전 기록을 보면 구이판을 뒤집어 가운데 국물을 넣고 주변의 넙적한 판 위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바로 전골이다.
전골이란 요리는 원래 몽골에서 유래했다. 중국의 훠궈나 일본의 샤브샤브도 거슬러올라가면 뿌리는 서로 같다. 정확히는 보르츠다.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휴대하기 편하도록 소고기를 얇게 저며 햇볕에 바짝 말려 가지고 다녔는데, 막상 이동을 멈추고 이것으로 식사를 할 때는 물을 끓여 풀어 익히는 방식으로 먹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굳이 고기를 말려서 가지고 다닐 일이 없으니 그냥 날고기로 뜨거운 물에 데쳐 익히는 방식으로 먹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일찍부터 소고기를 즐겨먹었던 조선에서 굳이 전골방식으로 고기를 구워먹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당시 소들은 거의 일소였다. 지금처럼 우리에 갇힌 채 사료만 먹다가 도축되는 것이 아닌 평생 논에서 밭에서 죽어라 일을 시키다가 때되면 잡아서 그 고기를 먹는 것이었다. 당연히 지방도 적고 고기도 질길 수밖에 없었다. 괜히 고기도 먹어본 사람만 먹는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고기를 어떻게 질기지 않게 최대한 연하게 구워서 즐길 수 있을까? 더구나 불조절이 어렵던 당시 타지 않게 고기를 굽는 것도 일이었었다. 그렇다 보니 설야멱적이니 뭐니 해서 고기를 굽다 말고 눈이나 찬물에 식혀서 다시 굽는 방법도 고안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양념한 육수를 가운데 두고 거기에 데치듯 익히며 다시 불판에 굽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현대로 넘어오며 불판이 뒤집히고 국물이 가장자리로 옮겨지며 우리가 아는 소불고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나마도 그냥 전골냄비 같은 곳에 대충 재료 때려넣고 그냥 끓여버리는 가게마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아마 황교익이 본 것은 이것이 아닐까. 가운데가 볼록 솟아서 따로 고기를 구울 수 있었던 예전의 소불고기가 아니라 그냥 대충 전골냄비에 때려넣고 국물과 끓이는 방식의 불고기를 보고 스키야키를 떠올린 것이 아닐까. 이것은 분명 스키야키와 닮아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불고기의 원형이었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지금의 불고기 자체는 그럴 여지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예전 황교익과 불고기와 관련해 한창 시끄러울 때 끄적이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크게 반영되었다. 대개 어린시절 보았던 불고기의 이미지는 TV로 본 것들이고, 자라서 불고기를 사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경험들은 또 그와 사뭇 다르다. 아예 양념없이 굽는 것도 있고, 혹은 그냥 양념에 재워 바로 불판에 굽는 방식도 있다. 그와 별개로 국물이 있는 종류의 불고기도 있다. 이게 왜 불고기인가 어려서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굽는 방식에 국물이 하나 추가된 것이었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이 역시 몽골이 나온다. 그리고 몽골의 보르츠에서 훠궈와 샤브샤브도 발전해 나오고 있었다.
지금도 사실 소불고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소고기 맛을 잘 못느끼기 때문이다. 국은 소고기구나 느끼는데 구이는 영 아니다. 그 대신 돼지고기 맛은 잘 느낀다. 이 역시 어려서의 경험 탓일 것이다. 고기를 먹는다면 돼지고기였다. 소는 국으로 먹는 것이었다. 오랜 기억이다. 지금도 여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