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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별책부록 - 로맨스는 별책부록

까칠부 2019. 2. 18. 11:40

그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즐겁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행복해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켜보는 자신마저 행복해지는 듯하다.


사실 그런 사람은 현실에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돈을 더 많이 준다니까. 남들이 알아주는 번듯한 대기업이니까.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 일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일이란 단지 밥벌이 수단인데 그를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일을 통해 주위로부터도 인정받고 자신으로부터도 인정받으며 스스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런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이런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일을 찾는 것도 만드는 것도 어쩌면 일하는 자신일지 모른다.


일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모두와 어울려서 모두로부터 인정받으며 자기가 한 일의 결과를 확인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일을 소중히 여기기에 일과 관련한 모두가 소중하다. 출판사이기에 훌륭한 작가의 그것도 자기 손으로 직접 쓴 육필원고란 얼마나 반갑고 소중할 것인가. 강단이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오히려 즐겁게 하나라도 더 찾아서 하려는 것처럼 대작가의 육필원고를 정리하고 옮기는 작업에 너도나도 함께하고 싶어 한다.돈만 아는 것 같은 사장 역시 대작가의 육필원고 앞에서는 그냥 책만드는 것이 좋은 사람일 뿐이다. 하긴 책을 계속해서 찍어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흑자를 만들고 돈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원래 출판사 일이란 자체가 그렇다. 잘 팔리는 책과 작가에게서 벌어들인 돈으로 안 팔리는 책과 작가에게 쏟아붓는 것이다. 팔릴지 안 팔릴지도 모르면서 신인작가의 책도 내주고, 어차피 안 팔릴 것을 알면서도 좋다 여기는 책들을 내보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난 회차에서 죽은 시인도 고작 250권 팔린 시집을 출판사를 통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었을 게다. 기껏 돈벌어서 엉뚱한 곳에 남 좋은 일 하는데나 쓰고 있다. 굳이 투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돈 벌자면 도저히 못할 짓이 바로 출판사 일일 것이다. 아마 임금수준도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출판시장이 이리 죽어 있는 상황에서.


확실히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다. 그냥 로맨스는 곁다리다. 하긴 그래서 쓸데없이 분량을 늘이려 내용을 배배 꼬고 하는 건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직구다. 강단이가 워낙 차은호와의 관계에 익숙해서 눈치를 못 채고 있을 분이지 차은호의 감정표현도 항상 거의 직설적이었다. 강단이에 대한 감정 때문에 차은호가 애써 무시하고 있을 뿐 송해령 역시 차은호에 대해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강단의와 지서준의 관계 역시 바로 직구로 바로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만큼 남는 시간들은 어디에 쓸까? 아니 오히려 강단이의 사랑이야기가 사소해 보일 정도로 그 배경 이야기들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출판사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리고 막 사회에 첫 발을 딛고 사회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결혼하고 이혼한 여자들과 결혼으로부터 도망친 여자의 울음과 넋두리가 안쓰러우면서도 한심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긴 흔히 말할 것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고 안해도 후회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부부들도 가끔 그런 말들을 하는데 하물며 이혼까지 하게 된 안타까운 경우들임에야.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고, 행복해지고 싶은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을 때 느꼈을 절망과 좌절과 환멸과 수치심이 어떠했을까. 그럼에도 붙잡고 싶었던 자신에 대한 후회와 그럼에도 놓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질책까지 더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순간들까지도 그들은 행복해지고 싶었다.


아마 강단이도 결혼식 당일 차은호의 손을 잡고 도망치려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결혼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가 당사자들을 짓누른다. 여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남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개인에서 가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다. 개인이라고는 없이 오로지 가족을 지켜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는 가장으로서만 불리게 된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성역할로 인해 남성이든 여성이든 할 것 없이 결혼이라는 자체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혼하고 나면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된다. 이전까지의 자신은 사라지게 된다. 과연 그런 무게와 두려움을 개인들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결혼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일 게다. 예전에야 조금 불합리해도 조금 부당해도 조금 힘들어도 어떻게든 맞추며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그럼에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은 물론 주위에 죄짓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원하면 결혼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그런 무거운 짐을 알아서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답은 무엇인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없애거나 아니면 결혼으로 인한 개인의 짐을 사회가 조금은 더 줄여 주거나.


강단이가 결혼 뒤에도 집안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성공적이었던 이전의 자기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내로서 서영아 역시 굳이 남편의 가족들에 대해서까지 무거운 짐을 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포기한 탓에 고유선은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쌓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외롭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누리며 즐기며 살 수 있게 되었다. 후회하는 것은 외로운 것이고, 후회하는 것은 그저 남편만이 세상의 전부였다는 사실이다. 근본은 여성에 대한 관성적인 성역할의 강요다. 남성보다 여성의 비혼비율이, 비혼을 선택하겠다는 응답비율이 높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임에도.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당연한 존재의 욕망일 것임에도. 하지만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해야 하고,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멀리 해야 한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그러나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마 연실에 없을 것이므로. 누가 알겠는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얼마나 남을 사랑해야 하는가의 경계를. 스스로 고통스러운 사랑도 의미없고, 그저 이기적이기만 한 사랑도 의미없다. 그 경계를 찾아간다. 늦더라도 신중하게 하나씩 하나씩.


도저히 참지 못하고 차은호가 강단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강단이의 반응도 그 사실을 아예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지서준과의 새삼 시작된 관계가 행복하기만 하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그런 사랑에 행복해하고 아파하며 그래서 로맨스다. 송해령의 마음은 차은호에게 닿았지만 보답받지 못한다. 그러나 출판사의 일은 그런 와중에도 분주하게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생각한 이상으로 재미있고 기대한 이상으로 재미있어지고 있다. 사람을 지켜보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 굳이 내 시간을 써가며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미있는 드라마다. 시간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