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 벌써 보이는 큰 그림의 조각들, 그리고 18년 전의 상처
벌써부터 구도가 명확해진다. 하필 대통령 조카다. 대를 이을 종손이라고 대통령이 싸고 도는 인물이다. 전투 헬리콥터 도입사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과연 그 설마대로 영창기록까지 조작해가며 군대에서 사병의 알리바이까지 만들어주었다면 그 대상은 누구일까? 그러니까 비싼 출연료까지 줘가며 의미없이 소모할 인물을 등장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배우 김영훈이 그만한 이름값을 가졌는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충 얽힌 배후나 사장이 어렴풋 보이기 시작한다. 최도현은 어려서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사형수가 되며 수술을 받고 나았다. 최도현의 아버지 최필수에게 씌워진 혐의는 군을 감찰하는 기무사의 중령을 살해한 살인죄였다. 바로 그 재판에 살해당한 중령의 운전병이었다는 한종구와 이번 살인사건의 희생자인 김선희가 있었다. 5년 전 한종구가 저지른 양애란 살인사건의 수법은 10년 전 창현동 살인사건을 모방한 것이고 이번 김선희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살해당하고 있었다. 굳이 김선희를 살해한 범인이 한종구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운동화까지 몰래 가져다 놓을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바로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대통령 조카 박시강과 당시 기무사 사령관이던 오택진이 만나고 있었다. 한종구의 재판을 유심히 지켜보던 인물이 바로 그 오택진의 비서였다. 과연 이런 각각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면 어떤 그림이 만들어질까? 아직 빈 부분은 많지만 전체의 그림은 얼추 그려지게 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터라 그 사이 또 하나의 사건을 맡게 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학교내 성폭력이 최도현이 풀어야 할 숙제로 주어진다. 무려 18년 전이었다. 당시도 정작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자만이 오욕속에 철저히 잊혀지고 있었다. 단지 이사장의 조카였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고보면 또 하필 이사장의 조카였다는 설정이다. 그렇게 학교의, 아니 철저히 어른들의 입장과 논리로 인해 보호받아야 할 학생이 오히려 학교로부터 내몰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존경받는 교육자로 퇴직한 가해자의 죽음에 얽히고 만다. 과연 과거 어른들의 이유로 묻혀 버린 수많은 성범죄의 가해자였던 그의 죽음은 실수인가? 살인인가? 살인이라면 그 범인은 누구인가? 이 또한 벌써부터 너무 명확히 용의자가 드러나는 바람에 흥미가 반감된다. 다만 어떤 식으로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고 의뢰인을 위한 선처를 이끌어낼 것인가.
하긴 어쩌면 이래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최도현은 수사관이 아니니까. 사건을 수사해서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경찰이나 검찰이 아닌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변론을 해야 하는 변호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오로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변론을 해야 한다. 다만 최대한 의뢰인에게 유리하도록 변론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충분한 근거들이 필요하다.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내세우는 것 만큼의 반증할 수 있는 증거와 증언들이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 나온 단서들을 어떻게 법정에서 의뢰인을 위한 변론으로 연결할 것인가. 수사관이 아닌 철저히 의뢰인의 입장에 서야 하는 변호사로서 최도현의 격정을 숨긴 냉정함이 인상적이다. 확실히 이준호의 연기가 많이 늘었다. 아니 타고 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뻔히 보이는 이야기인데도 흥미를 더한다. 추리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는 수사의 과정이 아닌 드러난 진실을 법정에서 증명하는 과정이 주일 것이기 때문이다. 드러난 진실들이 법정으로 이어진다. 어떤 식으로 최도현은 진실을 변론하며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판결을 이끌어낼 것인가. 어쩌면 마지막에 최도현이 변론하게 될 대상은 진정한 범인인 박시강이 되지 않을까.
주기적으로 볼 드라마가 없다가 한꺼번에 쏟아지다 하는 모양이다. 월화가 비기는 하지만 수목의 닥터 프리즈너와 주말의 자백이 한 주의 고단함과 무료함을 채워준다. 하긴 요즘 무료할 새가 없기는 하다. 최근 몇 년 이렇게 많은 글을 써낸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만큼 사건도 많고 그래서 신경쓰는 것들도 많다. 일도 여전히 바쁘다. 그래도 잠시는 한 숨 돌리며 드라마에 빠져보고는 한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