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 뜻밖의 반전, 진짜 살인의 이유
오히려 더 큰 더 놀라운 반전이었다. 친구를 대신해 복수를 한 것이 아니었다. 친구의 아들을 살리고자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단지 두려움이었다. 친구가 그 참혹한 일을 당했던 그날의 두려움이 아직까지 남아 무심코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것이었다. 단지 예전과 같다는 한 마디가 그녀를 살인자로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많은 성범죄들은 오히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일어나지 않는다. 그보다도 더 강력한 사회적 위계에 의해 폭력조차 필요없이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을지 모른다. 때로 부모가, 선생이, 친척이, 동네 어른이, 교회 목사가, 직장 상사가, 학교 선배가, 워낙 어른들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라며 세뇌당하듯 가르침받으며 자라는 탓에. 도저히 그같은 상황에 어떻게 거부의사를 전하고 행동으로 저항해야 하는지 쉽게 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설사 그런 사실을 알린다고 누가 알아주고 도와주고 하겠는가. 드라마의 사건에서도 결국 피해자는 아무런 구제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었다.
그런 친구를 동정했었다. 친구를 그렇게 버려두고 혼자만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죄책감도 가졌다. 하지만 그보다 두려웠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고 친한 친구였고, 더구나 혼자 남겨두면 무슨 일을 당할 것인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도 바로 외면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친구에 대한 동정과 죄책감에 가려졌던 당시의 두려움이 그 순간 떠오르고 말았다.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른다. 친구가 아닌 바로 자신이 그때와 같은 일을 당할 지 모른다. 이미 늙고 병들어 무력해진 환자의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이 차라리 상대를 죽여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게끔 만든다. 그건 본능같은 것이다. 뇌의 심연에 각인된 본능의 반응인 것이다. 적을 죽이고 위협을 제거하여 당장의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사람을 죽인다는 자각조차 없이 그녀의 손은 벌써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어째서 조경선은 자신의 과실치사에 대해 단 한 마디 변명도, 선처를 위한 합의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는가. 과실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기소되었는데도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말한 것은 진실이었다. 간호사로서 사람을 죽였다. 한 인간으로서 사람을 죽이는 큰 죄를 저질렀다. 어떤 말로도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자신이 지은 죄를 감추거나 가릴 수는 없다. 온전히 자신이 저지른 죄의 죄를 달게 받겠다. 죗값을 치르겠다. 그것은 곧 그녀에게 살해당한 김성조가 저지른 죄의 무게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무심코 살인이란 큰 죄를 저질러야 했을 만큼 김성조가 당시 저지른 행위가 조경선이라는 한 인간에게 준 공포는 큰 것이었다.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자신의 목숨을 끊어야 했을 정도로. 그럼에도 누구도 그로 인한 피해자를, 희생자들을 돌아보지 않고 가해자인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던 당시의 현실이 이같은 비극을 만든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때로 어떤 죄들은 슬프다는 것이다. 때로 어떤 악은 가엾기조차 하다. 살인은 죄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이다. 하지만 때로 그 죄를, 그 악을 넘어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이해하게 된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연민하며 동정하게 된다. 비극은 대부분 개인보다 사회로부터 오는 것이다. 개인이 개인을 지키지 못하기에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세상은 그들을 방치해 왔고 끝내 스스로 가해자가 되도록 내몰고 있었다.
또 하나 최도현을 둘러싼 비밀의 자락이 밝혀진다. 하유리의 아버지 다음으로 심장이식수술을 받을 대기자가 바로 최도현이었다. 하유리의 아버지가 갑자기 죽은 덕분에 최도현이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조경선이 살해한 김상조의 다음 이식순번이 바로 김상조의 아들이기도 한 친구 유현이의 아들이었다. 혹시 유현이의 아들을 위해 조경선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닌가. 그래서 유현이의 아들이 아무일없이 수술받을 수 있도록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10년 전에도 최도현보다 앞서 수술받을 예정이었던 하유리의 아버지가 갑자기 죽었을 때 아무도 간호사인 자신에게 묻지 않았었다. 원래 예정된 죽음인 것처럼. 하유리가 최도현을 외면한다. 어쩌면 다른 불순한 의도에 의해 아버지를 대신해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기춘호도 최도현의 아버지에 대해 알았다. 자신이 체포했던 살인범의 아들이었다. 과연 최도현과 한종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과거 사건에서 자신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 최도현이 그렇게까지 한종구를 변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최도현은 기춘호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원망과 비난들을 쏟아낸다. 무능한 경찰. 한종구를 처음 무죄로 풀려나게 한 것도 기춘호의 허술한 수사였었다. 최도현이 무엇보다 진실을 추구하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거짓된 사실들에 가려진 진실을 밝히려 한다.
어째서 미투였는가 하는 것이다. 어째서 심지어 수 십 년 전에 일어난 일들까지 지금와서 까발리는가 하는 것이다. 왜 그때는 말하지 않았을까. 혼자서 아들까지 낳았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지금껏 길러 왔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의 두려움이 한 인간을 살인자로 내몰고 말았다. 지금에서야. 그래서 지금에서야 당시의 일로 한 사람을 아예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마저 생겼다. 과연 누구 때문이고 무엇 때문인가? 어째서 사회는 그런 피해자들에게 위드유를 외치는가. 단 한 사람, 그러니까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하고 의지할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없었기에. 세상이 그러지 못했었기에.
성범죄와 관련한 모든 드라마나 영화 가운데 가장 입맛이 쓴 이야기였을 것이다. 직접 피해자가 아니었어도 얼마든지 다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공포가 그래서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째서 피해자는 그렇게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당하고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가. 현실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