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자백 - 픽션조차 담아내지 못한 현실, 진실이 교차로에서 만나다

까칠부 2019. 4. 14. 07:10

결국 모든 것이 최도현의 아버지 최필수가 살인죄로 체포될 당시 복무하던 국군기무사령부로 모이고 있다. 양애란을 살해하고 다시 김선희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렸던 한종구도, 그 한종구가 모방했던 10년 전 창현동 살인사건의 진범인 조기탁도 모두 당시 기무사령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심지어 조기탁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김선희조차 당시 기무사의 간부들이 이용하던 요정의 종업원이었었다. 창현동 살인사건의 피해자 고은주 역시 그녀가 빼돌렸다는 마약성 진통제 페티딘이 당시 하유리의 아버지와 만날 예정이었던 검사 노선후와 교통사고를 일으킨 화물트럭 운전자에게서 검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배후에는 지금도 방산비리를 배후에서 꾸미고 있는 당시 기무사령관 오택진이 있었다. 당시 살인사건의 증인이자 최필수와도 계속 만나며 거래를 이어가고 있는 사이다. 결국 이 모든 사실들이 가리키는 진실은 무엇일까?

 

한종구는 조기탁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창현동 살인사건 당시 현장에도 있었다. 조기탁이 탄 차를 한종구가 운전하고 있었다. 한종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조기탁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10년만에 갑자기 당시 차승후 중령을 살해한 현장을 목격한 김선희를 살해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0년 전 진여사가 복원한 노선후 검사의 핸드폰 통화목록에 있던 설화라는 이름이 사실은 요정에서 김선희가 사용하던 이름이었다. 아직은 조각이 부족하다. 어째서 진여사는 신분을 감추고 최도현을 찾은 것이고, 최도현이 마지막에 도로 위에서 본 환각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혹시 노선후가 사고당하던 순간을 최도현이 목격한 것은 아닐까. 뇌사상태였다면 혹시라도 장기기증을 결심했다면 죽은 노선후의 장기는 누구에게로 갔을까? 처음 진여사가 혹시 최도현의 친엄마는 아닐까 의심했던 것을 떠올리게 된다. 차들이 오가는 십자의 교차로에서 그들은 다시 만난다.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하여튼 지난 몇 년 간 하도 큰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그냥 우습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기무사의 전사령관에 수많은 전현직 장교들이 연루된 방산비리라면 꽤나 큰 일일 텐데도 그러고보니 그런 일도 있었거니 여기고 만다. 청와대를 배후에서 움직이는 흑막도, 그를 밝히려다 자살한 경찰관도, 그리고 교통사고로 죽은 노선후의 어머니 진여사를 꼬박꼬박 어머님이라 부르면서 만나서 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차장검사의 존재 역시. 군대도 안 갔다 온 정치인이 설치는 것에 분노하는 모습까지도 너무 익숙하다. 군복을 입은 채 노골적으로 기수를 이야기하고 돈을 앞세우는 모습 역시 너무나 친숙한 것이다. 이래서야 드라마든 영화든 시나리오 쓰려면 보통 곤란한 것이 아니겠다. 충격을 주어야 하는데 실소부터 나온다. 어떤 설정을 해도 놀라기는 커녕 기존에 뉴스로 보도되었던 사실들의 재탕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픽션이 현실을 따라가기란 어렵다. 하긴 1980년대까지 누가 그 거대한 소련이 하루아침에 해체될 것이라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 서로 쫓고 있는 목표가 다르다. 하유리는 아버지의 수첩을, 그리고 수첩에 기록된 이들의 행적을 쫓는다. 최도현은 전직형사 기춘호와 함께 한종구와도 얽혀 있는 10년 전 창현동 살인사건을 쫓는다. 그런데 우연처럼 그들의 서로 다른 길이 자꾸 맞물린다. 최도현이 발견한 조경선이란 이름과 하유리가 만난 진여사의 정체와 그리고 다시 조기탁의 행방과 노선후의 행적을 쫓으며 그들은 교차로에서 마침내 마주치고 만다. 조기탁을 쫓으며 나왔던 페티딘이란 이름도 노선후의 교통사고와 관련해 등장한다. 잠시 마주친다. 잠시 서로 돕고 돌아선다. 그리고 만난다. 굳이 먼 길을 돌아 교차로에서 교통사고를 내야 했던 진실처럼. 얼추 큰 그림은 그려지지만 그 사이 맞물리게 될 조각들이 궁금하다. 과연 그들이 마침내 마주치게 될 진실의 무게란 어떤 것일까. 현실은 그래도 해피엔드로 끝난 모양이지만. 그 뒷모습을 쫓는 과정이 흥미롭다. 현실은 항상 어떤 픽션보다도 가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