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더뱅커 - 돈과 욕망이 있는 곳, 그리고 돈키호테

까칠부 2019. 5. 2. 07:06

돈이 있는 곳에 욕망이 있다. 욕망이 모이는 곳에 다툼이 생겨난다. 가장 적나라한 현장이다. 돈이 모이는 은행에서 그 정점을 두고 다투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의 숨겨진 이면이기도 하다. 순진한 고객의 돈을 탐하고, 서로가 가진 지위와 권력을 욕심내며, 그를 위해 불의한 수단까지 서슴없이 동원한다. 오로지 속이고 또 속이고 야합에 음모에 기만과 술수로 가득한 아수라장에 오로지 은행원이고자 하는 한 남자가 뛰어든다.

 

말 그대로 판타지다. 아마 원작은 일본에서 버블이 꺼지고 금융권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를 타개하며 은행을 개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버블을 만든 당사자로서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며 여전히 이익만을 탐하던 당시 일본 은행의 타락과 부도덕성을 고발하고 있었다. 과연 우리라고 다른가. 아니 다른 나라라고 크게 다를 것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인해 촉발된 금융위기 당시도 미국의 금융기업 임원들은 미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등 타락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돈이란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마음대로 주무를 힘이 있으니 그만큼 오만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한가운데서 마치 멸종위기 동물처럼 은행원으로서의 양심과 신념만을 오로지 추구하는 인물이 나타난다.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대개는 실제 있었던 일들이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일들일 것이다. 하지만 철저히 은폐되었고 설사 드러나더라도 제대로 책임지는 경우 또한 드물다. 그래도 좋으니까. 그래도 좋을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 힘을 서로 가지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일 터다. 은행이란 어떤 존재인가. 은행원으로서 지켜야 할 양심과 신념이란 어떤 것인가. 은행으로서 은행원으로서 바르게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또한 어떤 의미일 것인가. 어눌하고 썰령하고 그러나 오로지 성실하고 강직하다. 영리하지도 계산이 빠르지도 못해서 사격선수였던 것처럼 오로지 과녁 하나만 바라보고 있다. 출세는 못했지만 그만큼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이 많다. 여전히 그가 소중히 지키고 있는 것들이다.

 

원작을 재미있게 보았었기에.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2차원의 그림보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배경보다 더 실감나게 몰입감있게 다가온다. 실제 이런 일들이 어디선가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런 일들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금융감독원과 국회와 대학과 은행이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얽히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긴장관계에 있어야 할 기업과 은행이 고객의 돈으로 야합하며 밀착한다. 그런 이들의 입에서 정의가 나오고 개혁이 나오고 국익이 나오고 법과 윤리와 질서가 습관처럼 튀어 나온다. 차라리 그들과 닮고 싶다. 그들을 닮아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고 싶다. 한수지의 욕망도 그래서 이해가 된다. 대개는 그런 식으로 현실과 타협하고 순응하며 그들에게 물들어 가는 것이리라.

 

왕과 같다. 왕이란 개인이며 국가 그 자체다. 그래서 공인이다. 개인을 넘어선 공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은행장이 노대호를 압박한다. 그냥 은행원 개인이고자 하는가. 한 개인으로서의 양심과 신념만을 지키려 하는가. 은행장인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수많은 운명들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전한다. 개인의 선보다, 개인의 정의보다, 개인의 양심이나 신념보다 더 소중한 더 절실할 무엇이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무언가 의도를 숨긴 것 같다는 것이 진짜 왕과 같을 것이다. 경쟁자는 용납지 않는다. 방해자도 용서치 않는다. 당했다면 반드시 복수한다. 나는 곧 은행이다. 내가 곧 나라다.

 

기대한 것보다 짜임새도 연출도 더 좋은 것 같다. 뒤늦게 볼 것 없어 보기 시작했다가 무심코 빠져들게 된다. 아직 앞의 이야기를 다 보지 못했다. 배우들의 연기야 말할 것도 없다. 얼핏 작위적인 김상중의 연기도 노대호의 캐릭터를 생각하는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것이 있다. 김상중 자신의 이미지까지 고려한 설정이었을 지 모르겠다. 선의와 악의, 정의와 탐욕, 그리고 모략과 진실까지. 채시라는 또다른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늦게 보기 시작한 것이 아쉽다. 너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