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대림동 여경논란과 한국 드라마의 여성들

까칠부 2019. 5. 20. 17:43

그동안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불만이 하나 있었다. 사실 최근에 생긴 불만이다. 건강을 챙기겠다고 운동이란 것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눈이 트이게 된 결과다. 과연 드라마속 인물들이 저런 식으로 운동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어째서 드라마에서 특히 여성들은 웨이트를 하지 않는 것일까.


웨이트란 한 마디로 근력운동이다.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다. 그리고 근력은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근력이 없으면 유산소운동도 제대로 못한다. 아예 근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심지어 유산소운동마저 근력운동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정한 근력을 갖춘 상태에서 반복하는 저강도의 유산소운동은 심폐지구력의 향상조차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숨도 차고 땀도 나니 나름대로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은 있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는 뜻이다. 물론 대부분은 그 정도로도 충분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운동선수나 경찰, 소방관, 군인 등 몸을 쓰는 일이 많은 사람들이다.


운동능력을 키우려 해도 웨이트는 기본이다. 경찰이나 소방관, 군인 등이 만일의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려면 당연히 최소한의 운동능력은 갖춰야 하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의 인물들 가운데 격투기를 잘한다는 설정 정도는 상당히 있는 편이다. 복싱도 하고, 격투장면에서 유도로 업어치기 하는 장면도 제법 나온다. 그런데 복싱이든 유도든 근력이 있어야 때로 자신보다 더 큰 상대도 최소한 제압하지 못하면 쉽게 제압당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를 위해서라도 평소에 체력과 근력을 관리하는 것은 필수여야 한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에서 대부분 - 아니 거의 모든 여성들이 아예 웨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여성에게 근육은 불필요하다. 여성에게 근육이 있으면 미적으로 보기 안 좋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을 해도 근육이 두드러지지 않는 운동을 해야만 한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약물 안 쓰고 그저 운동만으로 단기간에 근육이 불거질 정도가 된다면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할 수 있다. 근육성장에 필요한 남성호르몬이 훨씬 더 많이 분비되는 대부분 남성들도 운동만으로 울퉁불퉁 불거진 몸매를 가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죽어라 운동해봐야 어지간해서는 근육이 좀 있구나 하는 이상의 몸은 만들기 힘들다. 하물며 여성임에야. 


그래서 운동을 컨텐츠로 하는 어느 여성유튜버의 경우도 정작 웨이트는 나보다 더 많이 치는데 근육은 크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작은 몸으로도 나보다 더 많은 무게를 거뜬히 들어올리고 풀업도 아예 중량까지 매달고 한다. 나보다 한참 근력이 더 강하다. 무슨 말이냐면 남자들이 옷 입을 때 핏이 안 산다며 운동 안하는 것이나 여성들이 근육 생길까봐 운동 않는 것은 그냥 괜한 걱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 쉽지 않다. 그럴 수 있으면 그냥 타고난 재능이라 봐야 한다. 그런데 그런 괜한 걱정에 심지어 경찰들조차 격투기는 해도 웨이트는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보여준다.


바로 그 여성유튜버와 관련한 논란이었을 것이다. 여성경찰들의 체력기준에 대한 논란을 두고 그 여성유튜버가 직접 남성들과 같은 기준에서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 준 바 있었다. 솔직히 기대했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나도 그 여성 유튜버처럼 남성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싶다. 하지만 오히려 비난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오히려 여성들에 대한 차별만 심화시킬 것이다. 여성들의 처지를 더 열악하게 만들 뿐이다. 어째서? 여성은 어차피 운동같은 건 잘 하지 못한다. 근력도 약하고 체력도 약하다. 그런 사실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그를 전제로 남성들의 일방적인 배려만을 받으려 한다. 양보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여성다운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러고보면 어릴 적 보았던 외국영화에서는 여성들이 그야말로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근육을 단련하는 모습도 제법 보이고 있었다. 어차피 남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성으로서 전사같은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째서 한국에서는 그런 것이 안되는 것일까? 가장 먼저 미디어의 문제는 아닐까. 먼저 근육이 있는 강한 여성을 꺼리는 대중의 인식에 굳이 그를 거스르려 하지 않는 미디어의 안이함이 그런 인식을 확산시키고 고정시킨다. 범죄자들과 실제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경찰들도 그저 날씬하기만 하면 좋다. 기껏 운동이라고 해봐야 런닝머신 위를 달리거나 혹은 필라테스로 몸을 가꾸거나. 그리고 그것이 여성의 이상적 모델로서 재생산되기도 한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대림동 여경과 관련한 이슈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여성이라고 반드시 남성에 비해 근력이 약해야 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다. 단련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여성도 남성에 근접하거나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남성보다 더 우위에 설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유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포기한다. 오히려 외면하며 그런 노력들을 적대하고 혐오한다. 과연 이번 논란에 자극받아 남성들에 뒤지지 않으려 노력에 나설 여성들은 몇이나 될 것인가. 자신들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들마저 남성을 탓하며 여성에 대한 배려에 숨으려 하지는 않을 것인가.


남들보다 늦게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했다면 그만한 노력을 더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오히려 남성들의 배려와 양보로 지금의 기회를 얻었다면 후배들을 위해서도 자신들이 더 솔선수범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비겁하지는 않았다. 임무로부터 도망치지도 않았다. 충분히 자기 할 바는 다 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력했다. 그것을 수치로 치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주취자 제압은 경찰 발표처럼 남성경찰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완전히 제압한다는 게 어지간한 남성들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다만 이후의 대응들이다. 그럼에도 여성이니까. 여성은 사회적 약자니까. 영원히 약자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페미니즘이란 여성을 영원히 약자로 남게 만드는 주의나 주장은 아닐까.


드라마 제작자들의 잘못인지. 소속 연예인들을 관리하려는 기획사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런 여성들만을 바라는 대중의 문제인지. 그 대중은 과연 남성일까? 아니면 여성일까? 여성에게 근육은 혐오스럽기만 한 것일까? 옛날 이야기에서 여장부들은 바위도 번쩍번쩍 들어올리고 했었는데. 아쉬운 부분이다. 생각해 온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