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 통쾌 유쾌 후련한 동화 판타지
그래서 드라마인 것이다. 동화이고 판타지다. 모두가 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대가가 돌아올 것이다.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나쁜 일 한 사람에게는 벌을,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고, 그릇되고 거짓된 사람은 실패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정답이다. 어차피 개인이 양인태 같은 거물과 직접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진 것이라고는 없는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양인태 같은 거물과 맞선다는 것은 무모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대해야 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손을 잡아야 한다. 세상에는 그런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족들이 더 많은 것이다. 그들이 촘촘히 감시하고 서로 손잡고 그물을 친다면 어쩌면 저들과 싸워 이길 수 있을 지 모른다. 단, 전제가 붙는다. 법이 그들의 편이라면.
하긴 그래봐야 도지사인 것이다. 행정부의 수장이자 입법부와 사법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앙권력과는 다르다. 그러고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긴 바뀌었다. 사람 봐가며 수사한다. 사람 봐가며 판결한다. 사람 봐가며 보도한다. 권위주의적인 권력 앞에서는 침묵하며 옷가지처럼 나부끼던 검사와 판사가 권력이 바뀌자 갑자기 검찰과 법원의 사명과 독립성을 이야기한다. 두 손 곱게 모으고 공손하게 받아쓰는 것을 언론의 권리라 여기던 이들이 느닷없이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사실까지 왜곡하면서 권력을 비판한다.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고 권력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양인태 정도는 잡아넣어도 된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2016년부터 2017년 초까지 추운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이 있었다. 수많은 시민들의 분노와 열망이 있었다. 그를 통해 권력을 바꾸었고 세상마저 바꾸었다. 비로소 공무원들이, 시민들이,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아니었다면 조장풍과 주미란은 그냥 실직자가 되었을 것이고, 저 가운데 다수는 오히려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있었을 것이다. 혹은 그들 가운데 누군가 오히려 다른 이를 원망하고 증오하며 반대편에 서있기도 했을 것이다. 바로 우도하처럼. 바로 구대길처럼. 진실이야 어떻든 저들에 거스르면 안된다. 저들과 같은 편일 때 자신에게도 희망이 보인다. 길이 생긴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내 자식만은 나와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어서. 그래서 애써 부정하고 애써 외면하고 아예 남의 일인 것처럼 그래서 더욱 혐오와 경멸과 증오의 감정마저 가지게 된다. 노동자는 그래도 된다. 고작 노동자라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그러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래야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의 자신의 선택과 노력들을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 그를 위해서 수많은 죄악을 외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가담해 왔다. 후회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유쾌하다. 그래서 보는 동안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쁜 놈은 벌받아야 한다. 저런 나쁜 놈은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가끔 놀라고 가끔 당황하고 가끔 불안해하며 그러나 다치는 이 거의 없이 오로지 나쁜 놈들만 철저히 대가를 치르도록 만든다. 영웅의 이야기란 그래서 때로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공식적인 구조와 질서를 불신할 때 개인의 영웅적 활약상에 기대게 된다. 어차피 현실에 있을 리 없는 가상의 인물의 활약에 위로를 얻게 된다. 철저히 거짓된 꾸며진.
지나고 보면 진짜 남는 것 하나 없다. 기껏해야 지난 세월 실제 현실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들에 대한 패러디가 강하게 남는다. 그럼에도 과연 현실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하지만 그런 것 따지지 않고 드라마 자체로만 보면 통쾌하고 유쾌하고 후련하고 재미있다. 드라마의 주제까지 현실로 이어졌으면. 아무튼 허튼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