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법남녀2 - 차라리 자신의 몸에 칼을 꽂을 수밖에 없는 절망
차라리 죽일 수 없다면 죽는 수밖에 없다. 내가 죽더라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눈앞의 상대에게 조그만 피해라도 입힐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겠다.
물론 그런 계산같은 걸 할 정신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다급했으니까. 당장 무어라도 해야 했으니까. 이대로는 끝이다. 이대로는 끝장난다. 저 원망스런 사람의 말처럼 자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직장마저 끝내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죽는 것 말고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해하는 것 말고는. 그것으로라도 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 피해를 입히고 싶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으니까. 누구도 힘이 되어 주지 않았으니까. 그는 권력자였고 모두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자신과 계약직 동료들을 성추행한 정도로는 그가 받는 존경과 신뢰에 조금의 상처도 입힐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강자였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차라리 도망치거나 아니면 싸울 수도 없으니 죽는 수밖에 없다. 자기가 죽을 수 있다는 각오조차 없이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몸에 칼을 꽂았다. 죽겠다는 다짐도 없이 몇 번이고 칼을 꽂고 끝내 목숨마저 잃었다.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
내가 가끔 극단적인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이나 행동에 반감을 가지다가도 오히려 여성들이 놓인 처지를 왜곡하려는 남성주의자들의 안이함에 먼저 분노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 이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여성들은 직장이든 어디서든 성폭력을 당해도 하소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자기가 당한 일을 고발해도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조차 없다. 오히려 불리해지는 것은 피해자인 자신이다. 그래서 오히려 피해자가 죄인이 되어 숨죽여야 하고 도망쳐야 하는 일들이 반복된다. 사회가 그렇게 만든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신상을 들추고, 피해자의 책임을 묻고, 끝내는 다시 사회적 강자인 가해자에게 원래 쥐었던 권력의 칼을 쥐어준다. 대개 그만한 위치의 가해자들은 그럴만한 강자들의 그룹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성이니까. 아직 이 사회의 주류는 남성들일 테니까. 남성의 시각에서 사건을 보고 피해자를 이해하고 가해자를 동정한다. 어떻게든 합리화할 부분들을 찾아내어 그를 정당화해준다. 회식자리에서도 정작 피해자인 여성의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해자의 편에서 가해자의 권력에 편승해 피해자를 비웃고 조롱하고 있었다. 현실이 그런데 누구를 믿고 누구를 기대며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고 기대를 가지겠는가. 아무 희망없이 내일을 산다는 것이 가능한가. 오늘만 산다면 오늘 죽어야 한다.
차라리 살인이 아니었기에. 결국에 피해자의 자해로 끝나고 만 사건이기에. 그렇게까지 피해자를 궁지로 몰았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이, 누가 피해자를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간 것인가? 그나마 위안이라면 딸과 아내로부터 가해자가 받아야 했던 경멸의 눈초리일 것이다. 그나마 온세상에 알려졌으니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눈을 의식한 자신이 속한 집단 차원에서의 도덕적 응징이 가해질지 모르겠다. 그래봐야 사람이 죽었는데. 막다른 절망 속에서 죽을 줄도 모르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끝내 죽고야 말았었는데. 살고싶고 계속 일하고 싶어 엄마를 찾으며 절규한 내용을 듣고 말았다. 어딘가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을 현실일지 모른다.
냉정하고 담담하다. 시청자보다 앞서가지 않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는 절제가 돋보인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고 그 진실을 세상에 알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진실에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서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차피 자신들이 맡아왔고 앞으로 맡게 될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래서 더 쓸쓸한 서러움만 남기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시즌1을 왜 안보게 되었는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MBC라는 방송국 자체가 싫어서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을까. 다만 시즌2의 시간대가 너무 안 좋다. 오후 9시면 한창 뉴스를 볼 시간이다. 뉴스룸이냐 드라마냐. 일단 첫 2회는 제법 마음에 드는데. 시즌1까지 모두 찾아봐야 하는 것인지.
마약운반책들의 시신을 사이에 둔 마약범죄자들과의 밀고당기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 것인가. 운반책들을 살해한 진짜 배신자는 누구일까. 드라마를 쓸 줄 안다. 이건 진짜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