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녹두꽃 - 일본의 접근, 대원군의 만남, 그리고 악연

까칠부 2019. 6. 8. 07:07

사실 바로 저런 이유 때문에 일제강점기 동학은 일진회를 만들고 친일에 앞장서게 되었다. 당장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부터 뒤를 이은 최시형, 심지어 동학농민전쟁 이후 대부분 종교지도자들이 조정의 탄압을 받아 목숨을 잃거나 몸을 숨기고 외국으로 도망쳐야만 했었다. 도대체 정부의 토벌로 목숨을 잃은 동학교도가 얼마이며 이후로도 탄압을 받으며 고통받은 이가 몇이던가. 그에 비하면 일본은 처음부터 동학을 지원하려 했었고 손병희는 아예 조정의 탄압을 피해 일본에 망명까지 했었다. 과연 조정으로부터 탄압당하던 동학교인 입장에서 누구를 자신의 편으로 여겼을까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학의 주류였던 손병희가 일진회를 제명하고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이어간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실제 당시 일본이 동학을 이용하기 위해 접촉하는 과정에서 친분이 생긴 동학의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용구와 더불어 일진회를 만들고 친일에 앞장서기는 했었다. 더구나 당시 친일파로 돌아선 지식인 가운데는 일본을 통해 조선을 근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아직 민족주의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조선과 일본과 중국은 단지 서구열강에 맞서야 하는 아시아일 뿐이었다. 그래서 메이지유신 이전부터도 일본에서는 삼국이 연합하여 서구열강에 대항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양계초나 김옥균 같은 이들 또한 앞서 근대화를 이룬 일본의 도움을 받아 중국이나 조선이 아닌 아시아를 개혁해야 한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대동아를 외치면서 오히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역시 그런 당시의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을 배워 일본을 앞서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일파들이 있었다. 하필 백이현과 일본의 밀사인 다케다가 동문수학한 사이라는 설정이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여겨진다. 문명을 그토록 주창했던 백이현의 이후 선택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대원군이 과연 동학의 봉기와 관계가 있는가는 단지 당시 전봉준을 문초하며 그 관련성을 물었던 것 말고는 딱히 근거가 없다. 다만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당장 임오군란이나 을미사변 등 중요한 사건들에 대원군은 이미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 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을 상대로 끊임없이 음모를 꾸며 왔었고 그렇다면 동학의 봉기를 주도하지 않았어도 봉기를 일으킨 이후 접촉을 시도하기는 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전봉준이 청과 일본의 야욕을 막기 위해서 대원군과 먼저 접촉하려 시도한다. 백이강이 과연 한양에서 대원군과 만나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그리고 하필 비슷한 무렵 송자인마저 상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참고로 드라마에서 백성들을 마음때로 납치하고 약탈하며 살해하기까지 하는 청군들이 당시 주둔한 것이 얼마전까지 미군이 주둔하던 바로 그곳이었다.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 정확히 그럴 의지조차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어차피 귀하신 양반들이 보기에 아전이나 노비나다. 자신들에 비하면 한없이 비천한 사람같지도 않은 존재들인 것이다. 그것이 황석주로 하여금 평소 신념을 저버려가며 백이현을 배신한 이유였었고, 그것을 알았기에 더욱 백이현은 유월을 노비에서 풀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서형인 백이강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서모인 유월을 위해서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신분이 없어진 세상에서 황석주와 대등해지기 위한 것이었다. 괴물이 아닌 인간 백이현으로써 오롯이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펼쳐보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집강소에서 폐정개혁을 주도할 때 그래서 백이현은 백이현 자신으로 남을 수 있었다. 복수니 야망이니 하는 집착을 버렸을 때 그는 온전히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으로 살기에는 시대가 너무 불안하고 급하기만 하다.


하필 전봉준과 백이강을 원망하며 탈영했던 김가가 송자인에게서 백이현이 도채비란 사실을 듣고 만다. 고의가 아니었다. 송자인은 백이현이 도채비란 사실을 몰랐고 김가도 그 총이 도채비가 가지고 있던 전리품이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번개까지 살해한 그 도채비가 사실 자신들을 이끌던 별동대 대장 백이강의 동생이었다. 일본의 밀사가 전봉준을 찾고, 폐정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의 저항이 안에서 들끓는 가운데 백이현이 남긴 원한이 다시 송자인을 통해 그를 찾는다. 백이강이 한양에서 본 현실은 더 비참하기만 하다. 결과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 과연 이후 그들이 걸어갈 길은 무엇인가. 그들은 과연 어디를 거쳐 어디까지 가게 될 것인가.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될 역사지만 그러나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