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 - 진사 황석주의 조선과 백이강의 조선,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한 나라가 - 즉 하나의 체제와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결국 낭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계속 반복된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야 아직 명분도 정통성도 부족하니 많은 것들을 약속하게 된다. 보다 더 정의롭게, 보다 더 깨끗하게, 더이상 누구도 굶주리지 않고 억울하게 빼앗기거나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하지만 아주 사소한 권리라도 한 번 주어지면 다시 되돌릴 방법이 없다. 그렇게 권리 위에 권리가 더해지고 다시 권리가 더해지는 과정에서 특권이 만들어지고 독점이 이루어진다. 불평등이 심해짐에 따라 사회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장 조선만 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가난하기만 한 나라는 아니었다. 다만 그럼에도 조선 조정이 거두어들여 쓸 수 있는 세금 자체가 너무 적었다. 오죽하면 구한말 조선의 재정을 지탱한 것은 고종 개인의 재산인 내탕금이었을 정도였다. 어째서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원래는 양천제였다. 양인과 천인만이 있었다. 그래서 중인인 백이현도 과거를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양반과 중인과 일반 백성이 양인이고, 그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이 천인이다. 백정도 사실 처음에는 양인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백정이란 원래 고려까지 백성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소잡고 버들고리나 짜서 파는 화처들과 같은 취급을 받지는 못하겠다 해서 백정은 화척들이 가져가고 달리 백성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과거공부에 작심하고 매달릴 수 있는 계층은 정해져 있었고, 그에 따라 과거를 통해 관직에 오르고 권력의 냄새라도 맡을 수 있는 이들 또한 특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관직을 독점하는 계층이 관직을 가진 이들을 칭하는 양반을 신분으로 삼고 중인과 상민으로 다른 양인들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양반 안에서도 다시 한양 인근의 벌열과 한양을 벗어난 향반과 이름만 남은 잔반으로 나뉘며 그 격차는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로지 한양의 벌열만이 권력을 독점하며 나머지는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다. 한 사회를 이루는 수많은 구성원 가운데 오로지 벌열만이 남아 모든 것을 독점하는 사회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재능도 실력도 경험도 모든 것이 낭비되고 만다.
토지 역시 처음에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농민 가운데도 자영농이 있었고 그 가운데서도 제법 넓은 농지를 경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흉년이 한 번 들고 농사를 한 번 망치면 그 사소한 차이가 큰 차이로 벌어지고 만다. 반드시 권력을 앞세워 강제로 땅을 빼앗아서만이 아니다. 특권층은 특권층이란 이유로 다양한 방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힘없는 백성이기에 대부분 농민들은 당장 먹을 식량이 없어도 강제로 나라에 세금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부유한 특권층은 더 부유해지고, 그렇지 못한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진다. 심지어 특권층 안에서도 더 넓은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와 그렇지 못한 중소지주,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한 몰락한 이들이 갈리게 된다. 그렇다고 토지와 부를 독점한 특권층이 자신들의 재산을 나라와 사회를 위해 기꺼이 쓰고자 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원래 사람의 욕시이란 게 그럴 수 없는 것일 터다. 그렇게 개인이 쌓아두고 내놓지 않는 만큼이 사회 전체로 볼 때 낭비가 된다. 과연 굶주린 백성들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을 것인가. 부자들의 고리대금에 굶어죽고 맞아죽고 도망치다 죽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차라리 조선이라는 체제로부터 이반하는 이들마저 나오고 만다.
임진왜란 당시도 그래서 처음 많은 백성들이 그나마 자신들을 수탈하는 양반과 조정들을 대신 몰아내주는 일본군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일본군의 편에서 조선의 관군과 싸우는 이들마저 나오고 있었다. 최소한 조선이라는 질서 안에서는 도저히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없었기에 일본의 편에 선 이들에 대해서 마냥 비판만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왕조 말기에는 왕조가 정한 질서를 벗어나 떠도는 유민이 늘고, 더구나 왕조를 거스르며 일어난 반란에 동조하는 이들도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단지 구한말 조선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이들이 같은 조선인이 아닌 이민족인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이 그들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고려의 백성이자 신하로서 고려를 무너뜨리려는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의 편에 섰던 이들과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던 이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태종과 세종이 길러낸 실무관료들이 관직을 독점하며 소외된 공신의 후손들과 주변의 무리들이 수양대군을 중심으로 정난을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차라리 역적이 되는 것이 체제에 순응하며 사는 것보다 더 큰 더 확실한 기회가 되어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조선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이들을 칭찬해야지 그런 상황으로까지 내몰려야 했던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득권에 속한 자로써 친일파로 돌아선 이들을 비난하지 조선에서도 소외된 신분의 사람이 친일을 방편으로 삼은 것까지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조선을 지켜야 한다면 그것이 그들이 태어난 그들의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조선의 백성이며, 자신들의 가족이나 이웃, 친지들이 모두 조선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 편으로 역설적이기도 하다. 전봉준이나 손화중이나 동학의 봉기를 주도한 대부분 인사들의 후손이 아직까지 남아 제사를 모실 수 있는 것도 결국 일본이 근대적인 사법체계를 강요하며 연좌제가 폐지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은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자신들의 나라였다. 그 마음이 너무 애닲아서 차라리 고종과 당시 조선의 기득권들을 비난하게 만든다. 기왕에 망할 나라 차라리 더 일찍 순순히 내주었다면 그나마 되도 않는 싸움에 목숨을 걸다가 스러지는 이들은 줄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자신들의 잘못으로 모든 것이 끝난 상황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왕으로서 왕비로서 자신들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들의 알량한 권위를 내려놓을 각오마저 그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것이 조선이었고 조선조정과 왕실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왕이라고. 왕비라고. 조선의 주인이라고. 얼마나 서글픈 현실인가.
진사 황석주에게서 그런 조선의 모습을 본다. 배운 것 없는 백이강에게도 차마 반박할 말이 없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귀한 것이 있으면 천한 것이 있고 잘난 이가 있으면 못난 이도 있다. 그러니 신분의 구분과 차별은 당연하다. 과연 모든 백성이 하늘인가. 과연 모든 사람이 하늘인가. 하지만 하늘만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땅이 있어야 하늘도 있기에 하늘이 존귀한 만큼 땅도 존귀하다. 땅이 존귀하기에 비천하고 못난 이들 역시 모두 존귀하다. 존귀하면 하늘이다. 물론 굳이 논리로 반박하자면 반박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정해야 하고, 반박할 수 있음에도 반박하지 못한다. 대대로 양반이었기에. 사대부로서 인근의 명성과 인망이 높았기에. 지역의 명사로서 자신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를 옭죄는 족쇄였다. 그래서 때로 자신을 혐오하고 자신을 증오하면서도 그런 자신과 타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신은 옳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어가고 세상 또한 달라져가고 있다. 멀어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오는 것에 대한 낯설음이 그를 방황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차라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체면마저 내팽개친 다른 양반들은 솔직하기라도 하다.
기존의 조선을 지키면서 개혁을 하고자 한다. 일본이 성공하고 중국과 조선이 실패한 이유다. 하긴 일본 역시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뒤집지 못한 탓에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아 끔찍한 패망을 맞게 된다. 2차세계대전의 패배는 메이지체제의 붕괴이기도 했다. 메이지체제를 이루던 구질서의 모순이 무너지는 과정이었다. 여전히 왕이고자 하면서. 여전히 양반이고 사대부이고자 하면서. 여전히 보부상으로서의 특권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차라리 이름마저 바꾸고 자신의 평소 신념마저 뒤로 한 채 오로지 자신의 목표만을 쫓는 이도 있었다. 조정의 대신들이 일개 일본군 병사들에 무시당하고 궁녀들마저 아무렇지 않게 희롱당한다. 그런데 왕도 왕비도 울며 화만 낼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할 수도 없고 하려 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자신들이 나서겠다. 차라리 안쓰럽기조차 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조선이란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했어도, 왕이며 왕비마저 사라진 뒤에도 이 땅을 지키며 역사를 이어나갈 그들은 누구인가.
그래서 녹두꽃이었을까. 어차피 안될 것을 알면서도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일 것이다. 나라가 뭔지 조선이 뭔지도 모르면서 단지 일본군이 자신들의 땅에서 마음대로 횡포부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백이강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조선을 바꾸고자 했으나 좌절한 이와 조선을 지키고자 했으나 역부족임을 깨닫고 만 이와 전혀 다른 조선을 지키고자 나서는 이들. 시대는 그렇게 조선이라는 왕조에서 백성들이 지키고자 하는 조선으로 넘어가게 된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왕과 그저 탐욕스러울 뿐인 양반들과 차라리 죽음조차 각오하는 무지렁이 백성들을 통해서. 그래서 보게 되는 것일 게다. 그 싸움의 끝을 알면서도. 백이강의 파문도 어떤 복선이 될 수 있을까. 아주 비극만은 아니게 될 수 있을 것인가. 슬프기 싫다. 아프기도 싫다. 백이현만으로도 이미 너무 아프다. 인간이 슬픈 탓이다. 역사의 한가운데 선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