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녹두꽃 - 혁명의 끝, 그리고 황석주와 백이현의 대화

까칠부 2019. 7. 7. 06:42

결국 자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 누가 내몬 것도 아닌 전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황진사는 잔인하다. 자신이 양반이 아님을, 그래서 자신이 꾸어 온 꿈들이 모두 헛된 것임을 깨닫게 하더니, 이제는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대단한 인간이 못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만다. 대단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눈앞의 황석주만도 못한 인간이었다.

 

그것은 원망이고 분노였다. 그러면서 부러움이고 질투였다. 한때 황석주도 자신과 같이 변변치 못한 인간이었다. 비겁하고 추악한 위선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직시했고 인정했고 반성했으며 그를 바로잡고자 했었다. 최소한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었다. 자기와 같은 양반이 조선을 망쳤다. 자신과 같은 양반들로 인해 조선은 이미 안에서부터 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난 수 백 년 동안 조선을 지배해 온 양반으로서 마지막 만큼은 조선과 운명을 함께하고자 한다. 그래도 선비로서의 마지막 의기였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혹시라도 자기가 죽게 되면 홀로 남을 동생 명주의 안부도 묻지 않았다. 왜 자신을 이토록 부끄럽게 만드는가.

 

죽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기를 바라고 따라서 그를 죽여주어야 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더이상 그에게 미안하단 사과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들을 자격을 잃어 버렸다. 그토록 탓하고 원망하려 했건만 마지막 순간 너무도 당당해진 그를 보며 그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온전히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자신이 그동안 해 온 행위들을. 그로 인한 결과들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황석주처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지을 용기도 없다. 차라리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 죽여주기를. 그래서 홍가가 필요했었고 이제는 이복형 백이강을 기대하게 된다. 그토록 거부해 왔건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란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아버지의 길이었다. 그는 또다른 아버지였다. 차라리 자신을 죽일 수 없기에 황석주를 총으로 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야만 했었다. 그렇게 자신을 설득한다. 그렇게 자신을 변명한다. 스스로 속아넘어간 척 실제로 그렇게 믿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확인코자 한다. 다른 이들을 통해서. 자신 아닌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과 다른 선택을 했고 전혀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너무나 명징한 거울에 비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그래서 견딜 수 없이 추악하기만 하다. 그러고보면 맹자가 말한 자포자기란 얼마나 신랄하고 적확한 표현이던가. 자신을 위할 줄 모르고 아낄 줄 모르는 인간처럼 천박하고 저열한 것은 없다. 더이상 지켜야 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을 때 결국 인간은 폭주하게 된다. 뒤가 사라졌으니 멈출 일도 돌아볼 일도 없다. 단지 양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군의 힘을 등에 업고 학살하는 그 모습 어디에 자신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이 있던가. 이미 그는 이상가도 혁명가도 아닌 그냥 힘에 취한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잘생긴 외모에 속아넘어가기 쉽지만 윤시윤은 참 연기를 잘한다. 항상 주목하며 본다. 처음부터 백이현에 집중하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처음 굶어 죽어가는 모자를 보는 그의 눈빛에서, 아버지 백가로 인해 도탄에 빠진 고부의 백성들을 보는 표정에서, 그리고 아버지를 배신하고자 결심한 모습에서도 역시. 우금치의 참극을 보고, 송자인의 질책을 듣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면서, 홍가의 죽음과 황석주의 최후를 마주한다. 문명을 동경했고 조선을 바꾸고자 했었다. 조선을 일본처럼 문명국으로 다시 일으켜보려 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던 것일까. 그러나 자신의 변명에 속아넘어가기에 그는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너무 뛰어났었다. 자신을 위해 변명할 만큼 뛰어났고 그 변명에 속지 않을 만큼 뛰어났었다. 차라리 그것이 자신은 물론 모두에게 비극이 되었다. 조금만 어리석었으면. 아니면 조금만 더 영악했더라면. 염치가 없었더라면. 이 얼마나 약해서 슬픈 짐승인가.

 

드라마에서는 아무래도 이후 이어질 식민지침략까지 고려해서 일본과의 대립구도를 만드느라 일본의 악행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동학혁명 당시 토벌군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일본군이 아닌 조선의 경군이었었다. 아직 조선의 왕권이 완전히 무력화되기 전이었고, 더구나 청과의 전쟁으로 대부분 주력이 묶여 있었기에 일본이 동원한 200의 병력이란 정예와는 거리가 먼 예비군 성격이 더 강했었다. 당연히 우금치에서도 전투는 대부분 관군들이 치렀고 이후 동학의 잔당을 토벌하는 과정에서도 관군과 양반들로 이루어진 민보군이 주역을 맡고 있었다. 말 그대로 고작 200명의 병력으로 어떻게 그 넓은 전라도를 샅샅이 뒤져 동학의 지도부를 찾아내고 잔당들을 토벌하고 있었겠는가. 덕분에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동학을 추적하고 학살하는 일본군의 수가 못해도 수천은 되는 듯 보인다. 동학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관군과 민보군이 저지른 만행 역시 드라마에서 묘사된 일본군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아마 드라마에서 다루기 어려운 이후 이어지게 될 의병항쟁 과정에서 일본군이 대토벌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렀던 만행들을 위에 덧씌우고자 했던 의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병이다. 대한제국이 완전히 망하기 직전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던 조선 백성들의 의지를 꺾기 위해 일본은 드라마에서 묘사된 그 이상의 잔혹한 토벌작전을 진행했었다. 아예 초토화였다. 모조리 죽이고 불사른다. 차마 그런 것까지 보여주기에는 방송심의가 상당히 무섭다. 정작 동학을 토벌하는 주체였던 관군과 민보군은 뒤로 물리고 대신 남한대토벌 당시의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을 공중파에 맞게 순화시켜 동학에 덧씌워 보여준다. 하필 때가 때라서 그것이 너무나 절절히 와닿는다. 그렇게 처참하게 졌었고 이후로도 참혹하게 져 왔었다. 하지만 백이강이 말하지 않던가. 한 번 졌다고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백 년도 더 지나 지금까지도 그 싸움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일본이 소재산업을 무기로 협박해 올 때마다 순순히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어렵더라도 자존을 지킬 것인가. 이번에도 또 무력하게 져야만 하는가.

 

실패한 혁명의 뒤란 차라리 허무하기까지 하다. 성공하면 혁명가지만 실패하면 단지 반역자에 지나지 않는다. 설사 성공했어도 서로가 서로를 반역자로 몰아 처형하기 시작한다. 죽고 죽이고 그리고 살아남은 자도 결국은 누군가에 죽임을 당하고. 당당한 혁명군의 대장이 비루하게 숨어있다가 이름도 없는 이들의 뭇매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다. 장렬할 것도 없는 그냥 개죽음이다. 쫓기다 죽고, 잡혀서 죽고, 그나마 전봉준은 재판이라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 의해 이루어진 갑오개혁의 결과, 그리고 침략자인 서구열강의 관심으로 인해 근대적인 재판을 받고 연좌 없이 자신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김경천이 배신자인 것은 알았다. 하필 전봉준을 밀고한 것도 김가였던 터라. 하는 행동들이 어쩐지 그를 위한 복선인 것 같아서. 그래서 보고 싶지 않았었는데. 이제 백이강과 그의 별동대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슬픈 시대다. 그만큼 아픈 시대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완성도에 비해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다지 썩 기분좋게 보기 어려운 드라마다. 아직도 한국인의 영혼에 깊이 남은 상처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 시대를 살았었을까. 백가처럼. 혹은 홍가처럼. 아니면 백이현처럼. 백이강처럼. 시대가 그들을 옭죄는 족쇄가 된다. 선택을 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만 한다. 한낱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선택이고 두려운 책임이다. 그럼에도 역사에 한 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그를 통해 어떤 자신을 비추어 보고 있는가.

 

참고로 김개남을 밀고한 임병찬은 이후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최익현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했었다. 심지어 경술국치로 국권을 잃은 뒤에도 고종의 밀명을 받고 의병을 조직하다가 실패한 일까지 있었다. 그런 시대란 것이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고자 의병을 일으킨 동학을 토벌한 양반들이 한 편으로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후 다시 의병을 일으켜 싸우기도 했었다. 양반이고 상놈이고 없이 조선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다. 심지어 한국전쟁 당시도 같은 국민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그토록 무참한 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었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국민을 잔혹하게 학살할 수 있었다. 선도 악도 정의도 불의도 애국과 충의역시 아무렇지 않게 더럽혀지고 다른 이름으로 불려질 수 있는 시대.

 

물론 그렇다고 백이현을 동정하느냐면 그것은 또 전혀 아니다. 내내 이야기했었다. 나약하다. 비겁하다. 역시 전부터 말해왔었다.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다. 욕망에 약하고 두려움에 약하고 유혹에 약하다. 그래서 선택의 순간마다 그는 비겁했고 가장 쉬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그것을 결단이라고 용기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너무 많다. 역사에 그런 인물들은. 그냥 흥미로운 것이다. 너무 흔하고 그래서 너무 지겨운 군상들이라.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