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 도시의 경계, 인간의 경계, 귀신과 도깨비가 사는 곳
경계에는 도깨비가 산다. 빛과 그림자의 사이, 물과 땅이 나뉘는 경계,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보름달 같은. 하긴 경계를 넘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이어지니까. 빛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니고 물도 아니고 땅도 아닌, 그래서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출몰하는 것이다.
오래전에는 세상밖의 경계에 있었다.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 전, 혹은 다른 세계로 나가기 전, 그리고 고도화된 현대의 도시에서는 더 깊은 절망의 경계에서 좌절과 공포와 증오와 무엇보다 광기가 모이게 된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어차피 처음 보는 타인들이고, 서로 알지 못하는 익명들인 것이다. 그런 곳에서 때로 떨며 때로 함께 분노하며 때로 한께 광기에 젖어 살아간다.
아주 오래전 동네에 있던 이른바 달동네라는 곳을 가 본 적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도 어지간했지만 거기는 내가 살던 곳보다도 더 심했었다. 드라마의 에덴고시원을 보면서 떠올린 이미지다. 대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는 오물투성이의 눅눅한 좁은 골목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런데 들어보니 가까운 곳에 살았던 누군가는 내가 살던 동네를 그리 무서워 했었단다. 그곳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사는 것일까.
고시원이란 곳도 잠시 경험한 적이 있었다. 얇은 벽 너머로 옆방에 사는 사람을 알면서 모른다.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같은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을 보았으면서 본 적이 없다. 마치 오래전 하숙집처럼. 마치 오래전 여인숙이나 다세대주택을 보는 것처럼. 그러나 그 이미지가 사뭇 다른 것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어둠과 함께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사회의 주변에 살았고, 그런 주변으로 떠밀려난 사람들이. 하필 주인공이 소설가 지망생이란 점이 그래서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아무나 쓰는 글따위 요즘 세상에 글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글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고.
고시생이 없다. 햇빛이 없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목적을 잃은 고시원은 그만큼이나 목적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갈 곳을 잃은 분노는 증오가 되고 대상을 잃은 좌절은 광기가 된다. 차라리 폭력만큼 선명하고 공포만큼 분명한 것은 없다. 세상의 규범이 적용되지 않은 경계에서는 그래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치과의사와 버려진 형제와 그리고 아마도 어디에도 속할 진짜 주변인들처럼.
너무 익숙한 공간이다. 가파른 오르막길도, 어두운 고시원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는 동네사람들까지. 그러고보니 주인공도 막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다. 막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는 중이다. 달동네는 어려서도 상당히 무서운 공간이었다. 오랜 기억을 떠올린다. 사람이 무섭다. 아니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단지 주인공의 망상일지 모른다.
이동욱은 잘생긴 만큼 또라이 연기가 정말 잘 어울린단 말이지. 멀쩡한 사람을 여기하는 건 어쩐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기괴한 공간과 기괴한 사람들과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범죄와 그 경계를 떠도는 경계의 주변인인 주인공까지. 여러가지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순식간에 다 몰아봤다. 몰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