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 에덴고시원과 고단한 사회생활, 공포의 이유
도시란 타인이 모이는 공간이다. 전통적인 촌락이란 대부분 아는 얼굴들로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속속들이 알아온 이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부대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당장 옆집에 사는 누군가가 바로 어제 무엇을 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더 촘촘한 탓에 더 가까운 곳에서 항상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두렵다.
미지란 곧 공포다. 알지 못하기에 알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지 못한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항상 문을 단단히 잠그고 다녀야 한다. 혹시라도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두터운 장막까지 쳐야만 한다. 하지만 워낙 크고 워낙 넓고 워낙 수가 많기에 여전히 도시에는 개인이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더욱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장벽들이 오히려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킴으로써 그런 미지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져만 간다. 저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내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속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19세기 런던에서 일어난 끔찍한 연쇄살인의 범인 잭 더 리퍼에 대해 갑작스런 과도한 도시화로 인한 집단적 히스테리가 불러일으킨 환각은 아니었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분명 살인은 있었을 테지만 과연 그 모든 살인들이 진짜 한 사람에 의한 연쇄살인이었을 것인가. 그만큼 도시화된 런던에서는 많은 끔찍한 범죄들이 일어났고 덕분에 추리소설까지 크게 발달하고 있었다. 초기의 추리소설을 보면 그동안 도시의 범죄들이 얼마나 흉악해지고 잔인해졌는지 유추하게 한다. 하긴 도시만 그럴까? 촌락사회에서도 외부인은, 혹은 외부인에게 촌락사회는 그래서 때로 어느 것보다 큰 공포로 다가오고 그것이 다양한 민담등을 통해 남아 전해진다. 낯설다는 건 익숙한 사회에서 살아온 인간들에게 너무나 큰 공포다.
주인공 윤종우와 여자친구 민지은의 고단한 직장생활이 고시원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행위들과 교차되어 보여지는 이유다. 매순간 죽여버리고 싶다. 매순간 죽어버리고 싶다. 가깝지 않지만 이미 가까워진 인간관계로 인해. 결코 가까워질 수 없고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지만 이미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선택할 수 없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때로 살의가 되고 때로 적의가 되며 망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윤종우의 반응은 정상이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존재와 자아를 난도질하는 타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고시원의 범죄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실종되었는데도 아무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형사조차.
그래서 지옥인 것이다. 당장 모르는 사람과 좁은 공간에서 몇 시간을 함께 있으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그런 와중에도 쉽게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런 자리 자체가 불편해서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과도 함께해야 한다. 도저히 좋아질 수 없는 사람과도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 없다. 고시원은 물론 직장에서도. 악의를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정상적으로 행동하는데 보이기에 비정상으로 보일 뿐이다. 사람이 지옥을 만드는 것일까? 지옥이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이 윤종우 개인의 망상일 수 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에덴고시원이란 공간 자체가 상징이고 기호다. 우리 모두의 무의식이다. 타인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때로 타인에게 잔혹해질 수 있는 자신의 무의식인 것이다. 단지 무의식에서 그들은 자신의 망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단지 자기가 기분나쁘다는 이유로 화를 내고 공격적이 될 수 있는 윤종우의 모습처럼. 잔혹함조차 인간의 본성에 깃든 것이다.
로또를 사는 이유다. 당장이라도 때려쳐야지. 당첨되면 바로 눈앞에서 사표 던져버리고 당당히 걸어나와야지. 안타깝게도 매주 로또는 5천원과 함께 휴지조각이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질 뿐이다. 친하지 않은데 친한 척해야 하고, 가깝지 않은데 가까운 척해야 하고, 그렇게까지 신경쓰고 마음쓰며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끔 미치지라도 않으면 견딜 수 없다. 타인은 지옥이다. 인간은 지옥이다. 현실을 담은 한 마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