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쇼 - 아버지의 선택과 정치인의 선택, 성장을 위한 시련
어쩌면 현실의 이슈를 고려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논어에서도 공자는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을 오히려 강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천륜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고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는가. 마찬가지로 자식이 죄를 지었다고 부모가 그를 고발해야 하겠는가. 그래서 현대의 법에서도 가족을 위한 위증이나 은폐는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자식 대학 갈 때 쯤 되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도 용하다는 절을 찾아 부처님게 절을 올린다. 제아무리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부모나 자식이 위독한 상태라면 자신도 모르게 신부터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신은 물론 그동안 자신이 굳게 지켜 온 신념과 가치마저도 얼마든지 저버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신과 가족이 된 다정을 위해서 진심으로 그녀를 임신케 한 남자친구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다.
물론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유불리부터 따지기는 했었다. 어쩌겠는가. 그러니까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프다는 아들을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억지로 군대로 밀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비난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향하고, 가족들의 사소한 부분들까지 언론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지는 동안에도 끝끝내 버티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정을 위해서 그놈 만큼은 용서 못하겠다. 다정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했던 말 정도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뒤집을 수 있다. 그런 모습들이 전혀 밉지 않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다는 것일까.
청년층을 위한 임대아파트 건설을 위해 반대하는 주민들을 이간질하려 시도한다. 당의 지지율을 위해서는 청년층을 위한 임대아파트 건설이 필요하다. 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를 위해서라도 그것은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그를 위해 한 몫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는 결과가 전부다. 과정이나 동기같은 건 결국 지나면 잊혀질 뿐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실 매우 중요한 이슈이기는 하다. 청년들이 어렵다고 한다. 청년들이 힘들다고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더이상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는 역시 주거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조금 쓸만하다 싶으면 대부분 청년들의 수입에 비해 너무 비싸고, 그나마 만만한 곳들은 너무 외지고 위험하다. 장차 무언가를 하려 해도 돈이 모여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주거비로 나가는 지출이 너무 부담스럽기도 하다. 여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라도 낳으려면 그래도 마음놓고 살만한 집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부모의 도움 없이는 청년들이 그런 집을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째야겠는가.
청년들은 당장 월세방도 구하기 힘들어 허덕이는데 기성세대는 집값을 올리지 못해 안달들이다. 청년들더러는 더 노력하라 다그치면서 청년들의 미래를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위대한이 주민들을 이간질시키기 위해 짐짓 시켜서 말하게 한 것이지만 맥락상 전혀 틀린 것이 없었다. 다정이와 같은 아이들이 보다 싸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정부가 지어 공급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부담없이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임대주택의 혜택을 입게 될 대부분 청년들은 이미 기성세대의 눈에 보이지 않게 철저히 주변으로 밀려난 뒤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일을 하면서도 부모와 함께 살려 한다. 심지어 한 시간 반을 출퇴근하면서도 부모의 집에서 다니겠다 말한다. 그만큼 만만한 고시원비조차 더이상 청년들의 한 달 월급으로 감당가능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란 것이다. 최저임금이 200만원이 채 안되는데 고시원비가 50만원을 넘어가는 곳까지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그저 자기들 집값을 올리겠다며 임대아파트만은 절대로 안된다. 자기들 집값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임대아파트를 절대 지어서는 안된다. 왜 반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반대한다. 그래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머물 곳이 없는 청년들은 주변으로 주변으로 떠밀려나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저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모두 포기하려는 청년들만을 비난하는 것은 또 어떤 이기심인가.
과연 국민이 바란다고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이 훌륭한 정치인일 것인가. 국민은 과연 옳은가? 항상 선하고 정의롭기만 한가? 그렇다면 정치인의 바른 선택은 무엇일 것인가? 아직 위대한이 보여주는 정치인의 모습은 그저 대중의 요구에 따라가는 포퓰리스트의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인 이해를 위해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거스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 더 큰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도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 정면으로 국민을 거스를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그것이 진정 옳다 여긴다면 기꺼이 국민과 맞서 그들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정이 수술을 받지 않을 것은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그만큼 임신중절이란 너무나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사람들에게까지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시청자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어려서 임신중절을 하고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헤어진 연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위대한은 조금 더 고생해야겠지만 시청자를 위해서는 그런 건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위대한이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시련이었을 것이다. 제멋대로에 말은 지지리 안 듣고 사고만 쳐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 변덕스런 국민들을 상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단 하나 상대에 대한 애정만을 깊이 새긴다. 때로 화를 내고 야단도 치고 다투기도 하면서도 그러나 가족이기에 사랑한다. 진심으로 염려하고 걱정해준다. 인간으로서의 성장이기도 하다. 내일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