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village people - YMCA, 그리고 마이클잭슨

까칠부 2019. 9. 16. 09:09


의외로 노래는 아는데 누가 불렀는지는 모르는 대표적인 노래일 것이다. 하긴 그룹의 컨셉부터가 게이였다. 실제 멤버 가운데 게이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었다. 이들의 노래 가운데도 게이가 주제인 것들이 상당하다. 한 마디로 보수기독교의 영향력이 상당한 한국에서 당당히 불려지기 어려운 이들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럼에도 빌보드 2위까지 오른 인기그룹이기에 우리나라에도 제법 널리 알려진 편이기는 하다.


사실 이런 사정은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심지어 1979년에는 아예 야구경기장에서 수 만의 관중이 디스코 음반을 폭파하고 불지르는 '디스코 폭파의 밤'과 같은 행사가 대대적으로 일어났을 정도였다. 말로는 수 년 동안 차트를 점령하고 있던 디스코에 질린 대중의 반감이 표출된 사건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주로 흑인에 의해, 그리고 게이문화와 접목되어 크게 대중적으로 유행한 디스코에 대한 보수적인 백인 남성들의 반감과 위기감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원래 디스코란 흑인음악에서 비롯된 펑크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펑키라는 단어로 남아 있는 흥겹고 쫀득한 리듬을 중요시하는 펑크가 미국의 클럽문화와 맞물려 보다 직관적인 춤곡으로 발전한 것이 바로 디스코다. 그래서 디스코는 리듬이 전부라 할 정도로 중요했고, 심지어 16비트 드럼과 업비트 베이스라인만 추가하면 어떤 음악도 디스코처럼 들리는 마법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원래 미국은 록음악도 클럽에서 춤추기 위해 연주되는 경우가 많았고, 1960년대 후반부터 청년운동의 영향으로 말초적이고 쾌락적인 문화가 크게 유행하며 직관적이고 단순한 디스코는 대안으로서 급속하게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처음 디스코 음악이 들려지던 곳이 게이클럽, 혹은 사이키델릭 클럽 등 주류사회와는 거리가 먼 공간에서였다. 이미 여기서부터 파국은 예상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초기의 록은 블루스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었다. 아니 초기 록음악인 가운데 상당수가 블루스로 음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미 핸드릭스도 정작 미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영국으로 건너간 뒤에야 크게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었다. 해방되고 한국에서 일본의 엔카의 영향을 아주 기가막히게 잡아내어 왜색이라며 금지하던 것과 비슷하게 당시 미국에서도 흑인음악의 요소를 주류 백인들은 정확하게 찾아내어 사회의 주류가 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작 록이 시작된 것은 미국인데 록이 성장하고 완성된 것은 영국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영국에서 백인의 기악적 전통이 블루와 접목하여 새로운 양식으로 완성되자 록은 다시 미국에서 크게 유행하게 된다. 이른바 영국의 침공,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데도 정작 미국에서 성공한 음악들은 블루스적인 그루브함이 느껴지는 음악들이었다는 것.


1980년대까지도 이와 같은 상황은 반복되고 있었다. 전설적인 흑인 음악인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며 당시 미국의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치면 정작 미국사회는 그를 거부하고 주로 유럽 등에서 그를 받아들여 발전시키면 다시 역수입하는 상황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그만큼 흑인이란 미국 사회에서 금기였고, 흑인의 음악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연주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합의가 있었다. 바로 마이클 잭슨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래서 미국사회에서 마이클 잭슨이 가지는 의미란 매우 특별한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나타나기 전까지 공중파에서 흑인이 출연해서 노래하고 춤추며 대중의 환호를 받는 장면이란 매우 낯선 것이었다.


수 만의 관객이 야구장에 모여서 디스코 음반을 폭파하고 불태운다. 아예 폭동과도 같이 하나의 음악장르를 이것으로 끝장내 버린다. 덕분에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 디스코 음악들이란 1980년대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70년대 미국의 디스코란 그런 점에서 내게도 매우 낯설다. 디스코의 시작은 미국일 텐데 도대체 왜일까? 마이클 잭슨 이후 수많은 흑인음악인들이 대중적인 스타로 먼 한국에게까지 알려지게 된 탓에 그런 이유조차 사실 매우 낯설기조차 하다. 그러니까 마이클 잭슨이란 얼마나 위대한 음악인이란 것인가.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인종차별까지 최소한 대중음악계에서만큼은 그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빌리지 피플은 지금도 여전히 멤버를 바꿔가며 열심히 공연을 하고 있다.


어쩌면 대중음악이란, 아니 대중문화란 그같은 사회적 금기들에 대한 도전의 과정이 아닐까. 일제강점기 영화와 악극, 가요등을 통해 저항정신을 드러내려 했던 수많은 민족예술가들처럼. 우울하던 시대 사회의 저변에서는 그들을 위로해주던 그들만의 공식화되지 않은 음악과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독재자일수록 대중문화를 억압하고 통제하려 하는 것일 게다.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남아 있는 박정희의 가요정화운동처럼. 그 시절 건전하고 아름다운 대중문화에 대한 강요는 아직까지도 대중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 대중예술인이기에 더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고 마는 것은 그들이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이들인 때문일 것이다.


그냥 오랜만에 생각났다. 아마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듣다 문득 떠올랐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팝을 넘어 미국의 역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이유. 마이클 잭슨이 평생 수많은 루머와 비난 속에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던 이유였다. 죽은 뒤에까지 마이클 잭슨의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를 흠집내야 하는 절박함이 아직 미국사회에는 남아있다. 역사란 완결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항상 느끼는 바다.